[2004년 5월 13일 작성]
한시를 재미있게 읽는 법이라고 제목은 거창하게 붙여놓았지만 너무 기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대강 아시는 이야기일 것이고, 밑천이 별로 없어서 전문적이지도 못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한시를 그냥 뜻만 새겨보는 것에서 한걸음만 더 나가보는 정도라고 할까요...
1. 한시의 종류
한시는 크게 고체시(古體詩)와 근체시(近體詩)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체시는 당나라 이전에 주로 쓰여지던 시를 말하며, 평측(平仄)이나 압운(押韻), 글자수 등의 규제를 받지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시를 이릅니다.
근체시는 당나라 이후에 비롯된 것으로 평측(平仄)이나 압운(押韻), 글자수 등의 규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매우 까다로운 형식의 정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4구(4연)로 이루어진 것을 절구(絶句)라 하고, 8구로 된 것을 율시(律詩)라고 하며, 각 연의 글자수에 따라 5언절구, 7언율시 등등으로 부릅니다. 배율(排律)이라는 것도 있는데 12구로 이루어진 것을 말하지요.
(참고)
평측(平仄)이란 복잡하기만하고 옥편을 찾아보기 전에는 구별할 방도가 없는데다가 전문적으로 한시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과감히 생략...
압운(押韻)이란 같은 운을 가진 글자를 법칙에 따라서 일정한 자리에 두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언절구에서는 2구와 4구의 마지막 글자, 칠언절구에서는 1, 2, 4구의 마지막 글자, 오언율시에서는 2, 4, 6, 8 구의 마지막 글자, 칠언율시에서는 1, 2, 4, 6, 8 구의 마지막 글자에 같은 운을 가진 글자를 놓는다고 보면 됩니다.
2. 대구법(對句法)
대구법이란 수사법의 일종으로, 어조가 비슷한 문구를 나란히 벌여놓아서 문장의 변화를 주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보통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낮과 밤', '새와 쥐'라는 낱말이 서로 대가 되고, 전체적으로도 '~가 ~를 듣는다'는 구조가 같지요. 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도 대구법의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한시, 특히 근체시에서 대구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율시에서는 보통 3, 4구와 5, 6구가 대구를 이루어야 하고, 절구에서도 1, 2구가 대를 이루거나 3, 4구가 대구가 되어야합니다.
어제 소개드린 이색의 소우(小雨)를 예로 들어서 간략히 설명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細雨??暗小村(세우몽몽암소촌) 이슬비 부슬부슬 작은 마을은 어두운데
餘花點點落空園(여화점점락공원) 남은 꽃 점점이 빈 정원에 떨어지네
閑居剩得悠然興(한거잉득유연흥) 한가로이 지내며 느긋한 흥취 넉넉하니
有客開門去閉門(유객개문거폐문) 손님 오면 문 열고 떠나면 문 닫노라
이 칠언절구에서 대구는 1구와 2구에 베풀어져 있습니다. 세우(이슬비)와 여화(남은 꽃)가 대를 이루고, '몽몽'과 '점점'은 둘 다 첩어로 대가 되지요. '소촌(작은 마을)'과 '공원(빈 정원)'도 둘 다 장소라는 점에서 대가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고 '비가 내린다'와 '꽃은 떨어진다'는 것도 절묘하게 숨어있는 대구가 되겠습니다.
임제의 대인작(代人作)에서 3, 4, 5, 6 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芳心石不轉(방심석불전) 꽃다운 마음은 돌과 같이 구르지 않는데
離恨水俱長(이한수구장) 이별의 한은 물처럼 길기만하네요
霜後菊猶艶(상후국유염) 서리 내린 뒤 국화는 더 아름답고
雪邊梅亦香(설변매역향) 눈 가의 매화가 더 향기롭지요
'방심(꽃다운 마음)'과 '이한(이별의 한)', 돌과 물, '구르지 않는다'와 '아주 오래다'가 대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서리'와 '눈', '국화'와 '매화', '아름답다'와 '향기롭다' 등도 대구가 된다는 것을 쉽게 찾아낼 수 있지요. 後와 邊, 猶와 亦도 물론 대구입니다.
한시를 읽으며 어디에 대구가 베풀어져있는지, 어떤 글자가 대가 되는지, 의미상의 대구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등등을 살펴보면, 한시 감상의 재미가 한층 더 쏠쏠합니다. 대구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절묘하게 이루어진 작품이 더욱 뛰어난 것임은 당연하겠고요.
3. 시상의 전개.
4구로 이루어진 절구는 1~4구를 각각 '기(起) 승(承) 전(轉) 결(結)'이라고도 합니다. 8구로 이루어진 율시는 두 구절을 묶어 연(聯)이라고 하며, 각 연을 순서대로 '수련(首聯) 함련(?聯) 경련(頸聯) 미련(尾聯)'이라고도 합니다.
뭐라고 부르든 시상의 전개가 '기승전결'의 구조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시상을 일으키고, 그것을 이어받고, 변화시키고, 결말을 맺는다'는 전개를 가진다는 것이지요.
한시를 감상할 때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소우(小雨)' 역시 기승전결이 제대로 전개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마을에서 시상을 일으키고 그것이 꽃 떨어지는 정원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자신의 유유한 흥취로 변화하여 삶을 관조하는 자세로 결말을 맺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서경서정법(敍景敍情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경치(또는 사물이나 경물)을 먼저 서술하고, 심정(정서 또는 의미)을 뒤에 서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객관적인 것에서 시상을 일으켜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인용한 '소우(小雨)' 에서도 바로 찾아볼 수 있지요? 나중에 표현하는 정서가 '의(意)'인가 '정(情)'인가에 따라 시풍을 나누기도 하는데, 요것은 좀 전문적인 얘기가 되므로 생략합니다.
4. 맺음말
문학 작품을 감상하며 이것저것 분석하고 따지는 것은 사실 전문적 비평이 아니라면 뒤로 미루거나 생략해도 좋은 부분일 것입니다.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뜻을 찾아내고, 나름대로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며, 또한 그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한시라는 것은 일정한 규칙이 있는 정형시이고, 작가가 창작을 하며 그 규칙에 맞추고자 애를 쓴 것 또한 분명하므로, 먼저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느껴본 후에 형식미와 수사미를 찾아내보는 것도 감상의 재미와 묘미를 한층 돋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출처: http://mojolog.tistory.com/117 [가담항설 [街談巷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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