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존경하는 목사님! 설교 집에 다음과 같은 불교 용어가 있었습니다. 현실의 육신의 생활에만 얽매이지 말고, 찰나(刹那)적인 육신의 쾌락만 따르지 말고,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라는 말씀 이였습니다.
1. 찰나(刹那)의 어원
찰나란 불교용어로서 고어인 산스크리트의 크샤나를(ksana)음역한 것입니다. 단위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의 최소단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찰나의 시간적 길이에 대하여는 정확한 정의가 없지만 보통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사이에 65찰나가 흐른다고 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또한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찰나마다 ‘생기고 멸하고 멸했다가 생기면서 계속된다.’라고 하는데, 이 같은 흐름을 찰나생멸(刹那生滅), 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고 합니다.
2. 찰나(刹那)의 의미
우리의 말 중에 찰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유래된 말로써 지극히 짧고 빠른 시간을 말한 것입니다. 한국인이면 보편적으로도 많이 사용하는 말인데 보통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찰나는 불교의 시간관념으로써 대비바사론에 그 찰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명주 한 올을 젊은 사람 둘이서 양쪽 끝을 당기고 칼로 명주실을 끊었더니, 명주실이 끊어지는 시간이 64찰나였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120찰나쯤이 되어야 감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찰나가 얼마나 짧은 시간을 말하고 있는 지 짐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20찰나는 단찰나라고도 하며 시간으로 약 일의 5분의 3초 정도 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찰나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며, 찰나삼세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가 찰나에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데 계속적인 생멸현상을 찰나생멸(刹那生滅)이라고 합니다. 찰나의 사전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3. 찰나(刹那)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들 중에는 불교에서 유래되어 사용되고 있는 불교용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찰나도 순수한 불교 용어이지만 성도들이 자주 사용하는 생활언어 중 하나입니다.
불교의 문화가 기독교인들의 생활 속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찰나(刹那)라는 말을 아무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으면서, 이 말이 불교용어로서 지극히 짧고 빠른 시간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찰나에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데 계속적인 생멸현상을 찰나생멸이라고 합니다. 사물의 무상한 궁극적인 모습을 일기(一期)생멸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찰나를 현재라 하고, 전(前)찰나를 과거, 후(後)찰나를 미래라 하며, 이 셋을 합하여 삼세(三世)라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찰나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함으로 찰나삼세라고 합니다. 찰나는 불교 용어로서 극히 짧은 시간 단위로 지극히 짧은 시간 개념을 뜻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설교를 하면서 언어적 용어 선택에 주의가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현재 우리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말들 중에 불교의 사상과 교리가 담겨져 있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가를 재삼 느끼게 됩니다. 찰나(刹那)는 우리 기독교 신앙과는 맞지 않으므로 목회자나 성도들이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재생목사/ 서울대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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