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먹세그려, / 또 한 잔 먹세그려, / 꽃 꺾어 세어가며 무진무진 먹세그려. / 이 몸 죽은 후면 /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줄에 매어 가나 / 호화로운 관 앞에 만 사람이 울어 예나, /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 가기만 하면 /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 소소리 바람 불 때 /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야 / 뉘우친들 어쩌리.
송강 정철 `장진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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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뒤에 줄로 꽁꽁 묶어진 채. 지게 위에 거적 덮어 무덤으로 메고 가니. 억세 속세 떡갈나무 은백양이 우거진 숲 속에서… 그 누가 날 보고 한잔 먹자 하리오.’ 조선조 14대왕 선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강 정철의 그 유명한 장진주사(將進酒辭)의 일부다. 꽃을 꺾어 수를 세어가며 술을 먹자고 한다. 음주에 대한 탐닉 그리고 허무주의와 더불어 사대부들의 풍류의 미학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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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cheers), 독일어권(prost), 불어권(Sante), 이탈리아(Salute 등) 등 대부분의 건배사는 상대방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브라질 등에서는 잔 부딪치는 소리(Tim-Tim)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서양 영화속 건배사는 더욱 가슴 설렌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먼과 잔을 부딪히며 속삭인 명대사, ‘Here’s looking at you, kid.’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번역도 원문 못지않게 근사하다.(오른쪽 작은 사진)
우리 조상들은 좋은 술을 상대에게 권하고 나누는 과정을 즐겼던 듯하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하는 송강(松江)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와 같은 명시를 읊어가며 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이보다 더 멋진 건배사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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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문"
『한잔 먹세 그녀/또 한잔 먹세 그녀/꽃 꺾어 산 놓고/무진무진 먹세 그녀』로 시작되는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는 읊기만 해도 벌써 취흥이 오른다. 풍류를 아는 술자리에서는 으례 한번쯤 외어보는 국문학의 백미다.
글이 그러할진대 송강이 술을 좋아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다소 지나쳤던 모양이다. 그의 글속에는 술을 마시고 후회하는 대목이 더러 보인다.
그의 『송강집』에 나오는 『계주문』이란 글을 보면 송강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네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심신에 불평이 있어 마시고, 둘째는 어떤 감흥으로 인해 마시고, 셋째는 손님을 대접하느라고 마시고, 넷째는 남이 권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강은 스스로 자문해본다. 어떤 일 때문에 불평이 생길 때는 이해하면 되고, 감흥이 있을 때는 노래나 시를 읊으면 되고, 또 친구가 찾아오면 술이 아니더라도 정성과 친근을 베풀면 그만이고, 술자리에서 지나치게 권하는 이가 있다하더라도 자기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송강의 『계주문』은 『마음이여, 뜻이여, 누가 너를 통솔하더냐』는 자탄과 반생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러고 보면 술에 관한 시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중국기록에는 우 임금때 의적이 술을 만든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우 임금이 술을 마셔보고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칠 자가 있을 것이다』고 예언했다. 과연 우의 후손 걸이 술로 하 나라를 망쳤다.
공자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시지만 난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철학자「러셀」은『음주는 일시적 자살』이라고까지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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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주사 ; 술잔을 권하는 글.
송강 정철.
◐ 원문 ;
◐ 현대문 ;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잎으로 술 잔을 셈하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뒤엔 지게 위에 거적 덮어 꽁꽁 졸라매,
무덤으로 메고 가거나,
아름답게 꾸민 상여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나무 우거진 숲을 가기만 하면,
누런 해, 밝은 달, 가랑비, 함박눈, 회오리바람이 불 적에,
그 누가 한 잔 먹자 하리오?
하물며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며 뛰놀 적에는,
아무리 지난날을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 송강 정철(鄭澈:1536∼1593)
조선 선조 때의 명신·문인으로 본관은 연일이다.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大家)로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한국시가(韓國詩歌)의 쌍벽으로 일컬어졌던 송강(松江) 철(澈)은 유침의 막내아들이다.
1536년(중종 31)에 판관 정유심(鄭惟沈)의 아들로 서울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던 송강은, 그의 맏누이가 인종(仁宗)의 후궁인 숙의(淑儀)로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 동궁(東宮)에 자주 드나들면서 나이가 비슷한 명종(明宗)과 정답게 지냈으며, 그의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유(瑠)의 부인이 되었으나 을사사화에 매부인 계림군이 연루되어 화를 당했고, 송강의 아버지 유침도 관북(關北) 정평(定平)으로 유배되었다가 송강이 16세 때 풀려났다.
석방된 송강의 아버지 유침은 가족을 데리고 송강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남 담양부 창평(昌平)으로 내려갔다. 창평에 내려온 송강은 을사사화의 화를 피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순천(順天)으로 내려가 우거하고 있던 둘째 형인 소(沼)를 찾아가던 도중, 부호인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에게 그의 재질을 인정받아 지곡(芝谷 : 지실) 성산(星山 : 별뫼)에 정주하면서 김윤제의 사위인 류강항(柳强項)의 딸과 혼인하고 윤제의 조카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과 동문수학(同門修學)했으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송강은 그로부터 10년 동안 성산에서 글공부를 하였고, 송강(松江)이라는 호(號)도 성산 앞을 남북으로 흐르는 시내 죽계천(竹溪川)의 다른 이름인 송강에서 딴 것이다.
어려서부터 김린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에게 배우고 1561년(명종 16) 26세 때 진사시(進士試)에 1등이 되었던 송강은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자, 명종(明宗)이 방목(榜目)을 보고 어린 시절의 우정을 생각하여 기뻐하면서 "정철이 급제하였구나."하고 따로 주찬(酒饌)을 내리어 축하 연을 베풀어주었다. 1567년(명종 22)에는 율곡과 같이 호당에 들어갔다.
일찍부터 청백하고 곧은 성품으로〈총마어사( 馬御史 : 한나라 때 어사 환전이 매우 엄정하였고 항상 총마를 타고 다니므로 사람들이 총마어사라 불렀다)〉라 불려졌던 송강이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올랐을 때, 명종(明宗)의 사촌형인 경양군(景陽君)이 그의 처가의 재산을 약탈하고자 그의 처조카를 죽인 죄로 옥에 갇혀 있었다. 이에 명종은 송강에게 관대하게 처리할 것을 부탁하였으나 성격이 결백하고 강직한 송강이 법을 고집하여 경양군 부자(父子)를 처형하고 말았다.
이 옥사의 판결로 명종의 뜻을 거슬린 송강은 오랫동안 청선(淸選)이 막히었다가 31세 때 정랑(正郞)·직강(直講)을 거쳐 부승지(副承旨)에 올라 당시 격렬했던 당쟁 속에서 서인(西人)의 영수로 동인(東人)과 대결하며 예조(禮曹)와 형조(刑曹)의 판서(判書)를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오르는 동안 파란만장한 벼슬길을 걸었다.
송강이 45세 때인 1580년(선조 13)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나가 금강산(金剛山)과 관동팔경(關東八景)을 답사하며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었고, 「훈민가(訓民歌)」를 지어 도민의 교화에 힘썼다. 1597년(선조 18) 치열한 당쟁으로 양사(兩司)로부터 논척을 받았던 송강은 조정을 물러 나와 한 때 고향에 머물러 있다가 이어 창평(昌平)으로 내려가 4년 동안 유유자적하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시상을 가다듬어「전후미인곡(前後美人曲)」과「성산별곡(星山別曲)」을 비롯한 수많은 가사(歌辭)와 단가(短歌)를 지어 우리 나라 국문학사에 금자탑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 동인(東人)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江華)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면서 빈곤과 울분으로 신음하다가 둘째아들 종명(宗溟)의 단지(斷指)의 효성(孝誠)도 헛되이 12월 18일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이듬해 2월 고양(高陽) 신원(新院)에 장사지냈다가 현종(顯宗) 때 진천(鎭川) 지장산(地藏山)으로 천장(遷葬)하였다.
생전에 당쟁으로 반대당인 동인(東人)의 탄핵을 입어 관작의 추탈이 빈번하였던 송강은 죽은 후에도 포폄(褒貶)이 번거로워, 1594년(선조 27) 6월에 권 유(權 愉)·김우옹(金宇옹) 등이 상소하여 삭탈관직되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직후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상소로 관직이 복구되었고, 숙종(肅宗) 때 문청(文淸)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송강(松江)의 아들 4형제 중 차남 종명(宗溟)은 인조(仁祖) 때 강릉 부사(江陵府使)를 지냈으며, 막내 홍명(弘溟)은 부제학(副提學)과 수원 부사(水原府使)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고, 종명의 아들 양(瀁)은「어록해(語錄解)」를 간행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고제(高弟)로 영조(英祖)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내며 시문(詩文)과 글씨로 명망을 떨쳤던 호(澔)는 노론(老論)의 선봉이 되어 격심한 당쟁 속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며, 청빈한 성품으로 의식주가 서민과 같아서 정치에서 물러나 낙향해 사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재상을 지낸 사람인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자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거울같이 항상 올바른 마음을 지니라
이는 송강의 생애와 이념을 후손들이 본보기로 삼고자 집안 간에 나눠가졌다는 가훈이다.
송강의 훈민가(訓民歌)와 계주문(戒酒文)에 의하면,
첫째,「부모와 자식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지니라」
둘째,「노름·도박 등은 삼가라」
셋째,「스스로 폭음을 경계하라」
송강의 묘소는 현재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에 있는데, 송강정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강의 신도비는 1684년에 문정공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오위도총부부관 김수증이 전서하고 글을 썼으며, 비의 높이가 2.5미터이고 폭이 1.5m이며, 신도비각은 15평으로서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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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것은 일종의 허무.
허무를 잊게 하는 특효약으로서 술.
그래서 술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했었다.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가 물,불,공기,흙 이라면
술은 물이면서도 불이다. 정반대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 요상한 물질...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똥 바슐라르)
우리 역사속 인물들중에 술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이가 한둘이갯냐만은
송강 정철 선생(1536~1593)은 유별났다.
술을 무척이나 즐겨, 나중에 선조 임금에게 꾸지람들은 이가 송강 정철이다.
그리고 절주하라는 어명과 함께 은잔을 하사했다. 하루에 은잔 한잔만 하라는 의미로...
그는 집으로 돌아와 하인을 시켜 그 은잔을 두들여 크고 넓게 만들어(소주잔 크기의 은잔을 아예 세수대야로 만들어)
마셨고, 이 얘기를 전해들은 선조도 허허 웃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1.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원문)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해설)
술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헤아리며 끊임없이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으로 덮어서 졸라매고 가든
아름답게 꾸민 상여 뒤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뒤따르든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무덤을 말함]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굵은 눈, 소슬바람 불 때. 누가 한잔 먹자할까?
하물며 원숭이가 무덤 위에서 휘파람 불 때, 뉘우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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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Inspire warmth
따뜻함을 불어 넣어 주고
L ~ Listen to each other
상대방의 말을 들어 주고☆
O ~ Open your heart
당신의 마음을 열어 주고
V ~ Value your opinion
당신을 가치 있게 평가 하고
E ~ Express your trust
당신의 신뢰를 표현 하고
Y ~ Yield to good sense
좋은 말로 충고해 주고
O ~ Overlook mistake
실수를 덮어 주고
U ~ Understand difference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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