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뜨락 음악편지 ♬ 6호 (2016-04-11) (향기뜨락 음악편지는 매주 월요일 발송됩니다) (이 편지는 카페 메뉴 中 'CJ&공감 - 음악♡메일' 란을 통해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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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한국 가요계는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시대의 개막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이미 남진과 나훈아는 1960년대 후반부터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가운데 1970년대 들어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는 1970년대 초반에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남진은 나훈아보다 좀더 먼저 가요계에 데뷔해서 이름을 알린 뒤, 1969년에는 “가슴아프게”의 빅히트로 TBC 방송가요 대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남진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오는 등의 변화를 겪는 사이에 나훈아는 가요계의 새로운 톱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남진이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는 남진과 나훈아의 인기경쟁이 더욱 불을 뿜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경쟁적으로 세를 과시했고, 1971~73년에 걸쳐서는 인기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았습니다. 특히 1972년에는 남진의 대표곡인 “님과함께”와 나훈아의 대표곡인 “물레방아 도는데”가 한꺼번에 발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합이 펼쳐졌습니다. 1972년의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남진은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최고 인기가수”를 수상했고, 나훈아는 “TBC 방송가요 대상”의 “남자가수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남진이 나훈아와의 경쟁에서 박빙의 우위를 점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남진은 1971~73년까지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최고 인기가수”(가수왕) 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남진은 또한 “TBC 방송가요 대상”의 “남자가수 대상”도 통산 3차례나 수상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가 동시에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라이벌 경쟁구도에서는 남진이 근소하게 우위를 보였지만, 전성기가 지난 이후에는 나훈아가 좀더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롱런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 관계로 꼽히고 있으며, “오빠부대”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훈아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국민가수로 자리잡았음은 물론이고,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변함없는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훈아는 오늘날 한국 가요계에서 가장 많은 히트곡을 배출한 가수로 정평이 나 있으며, 노래방에서도 가장 많은 수록곡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의 조용필이 최고의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기 이전까지, 나훈아는 1970년대의 한국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국민가수로서 군림했습니다.
한국 가요계에서 역대 최고의 국민가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각 세대의 팬들 또는 평론가 집단의 성향에 따라서 여러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TV 방송국 출범 이후를 기준으로 할 때 조용필(1980년대), 이미자(1960년대), 그리고 나훈아(1970년대)가 역시 최고의 국민가수로서 전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전설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1960~80년대에는 아직 국내 가요계의 음반시장에서의 정확한 통계자료가 미비했던 시절이기는 하지만, 각 시대별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은 음반판매 부문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실적을 올린 가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남진, 나훈아 이외에도 트로트 가수들이 주류를 형성한 가운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포크락 장르가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솔로가수 중에서는 남진, 나훈아, 하춘화, 김추자, 문주란, 조영남, 송창식, 양희은, 혜은이, 최헌, 김세환, 김훈, 조경수, 최백호, 최병걸, 이은하, 이용복, 은희, 김상진, 조미미, 정훈희, 윤항기, 이현, 김세레나, 박상규, 옥희, 이수미, 정미조, 이수만, 백남숙, 전영, 정종숙 등이 두각을 나타냈고 트윈폴리오, 펄 씨스터즈, 바니걸스, 희자매 등의남녀 그룹사운드의 활약도 돋보였습니다.
한편 송대관, 태진아가 가요계에서 처음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시기가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송대관은 1976년에 “해뜰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최고 인기가수”를 수상했고, 태진아는 1974년에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 부연설명: 당시까지만 해도 트로트 부문의 유망주로 꼽혔던 송대관, 태진아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공백기를 가지며 미국 이민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1990년대 이후, 국내 가요계에서 트로트가 주류 장르에서 비주류 장르로 밀려나기 시작할 무렵에 송대관, 태진아 두 사람은 오히려 진정한 전성기를 열게 되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까지도 트로트 부문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따라서 송대관, 태진아는 오늘날에 와서는 시대별로 분류할 때 주로 1990년대 또는 200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가수로 언급되는 편입니다.]
한편 1970년대에는 한국 가수들의 해외진출도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패티김은 공식적으로 일본에 초청된 최초의 가수로서 기록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오늘날처럼 기획사의 조직적인 매니지먼트 활동이 이뤄진 건 아니지만 한국 가수들이 아시아권에서 열린 각종 가요제에서 입상하며 국위선양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비록 “한류”라는 단어 자체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늘날 한류열풍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미자, 패티김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분류되고 있고 남진, 나훈아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확연히 경계가 나뉘어질 정도의 이질적인 세대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트로트 가수들, 그중에서도 최정상급에 있는 “국민가수”들은 오늘날의 가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오랜 생명력을 과시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그만큼 활동도 더 활발하게 하고 많은 노래를 부르고 많은 노래를 히트시켰습니다.
이미자와 패티김은 196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이후 197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가요계의 톱스타로서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가요계의 톱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해서 197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는 전성기가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며 중장년층 어르신 세대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강산이 몇 번은 바뀌었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고 가요계의 판도 역시 신세대 위주로 흘러가고 있지만, 여전히 중장년층 어르신 세대들에게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은 가요계의 거목이자 “영원한 국민가수”로서 각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당시까지 국내 가요계에서 트로트는 “주류”, 포크락은 “비주류” 장르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류” 가요계를 상징하는 인물로서는 남진, 나훈아를 필두로 하춘화, 김추자, 문주란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요계의 또 한 축을 차지하는 “비주류” 부문에서는 김민기, 신중현, 송창식 등으로 대표되는 “싱어송라이터”의 등장으로 인해서 국내 대중음악 발전에 역시 한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음악감상실 “세시봉”은 그 시절 청년문화의 산실로 각광받고 있었습니다. 세시봉 출신의 음악인들 중에서는 맏형 조영남을 필두로 해서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양희은 등이 청년층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송창식은 당시 가요계에서 “비주류”에 해당하는 포크락 장르의 음악을 하면서도 1975년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기성 가수들을 제치고 “최고인기가수”를 수상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들 “세시봉 패밀리”의 막내인 김세환은 TBC 방송가요 대상의 “남자가수 대상”을 2차례나 수상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가수 겸 작곡가인 김민기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노래 “아침이슬”은 양희은에 의해 다시 불리워지며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아침이슬”은 유신정권에 의해서 금지곡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곡이 만들어질 때 당시의 창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운동권 가요”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양희은에 의해서 불리워진 “아침이슬”, “상록수” 등의 노래들은 오랜 세월동안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노래로 여겨지며 사랑받았습니다.
한편 이 시기의 대중음악 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한국 ROCK의 대부” 신중현입니다. 신중현은 광복 이후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가수활동과 작곡가, 제작자로서의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1970년대에 여러 가수들에 의해서 불려진 수많은 히트곡들이 신중현의 손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뮤지션 신중현”의 성공은 대체로 작곡가, 제작자로서의 역량에 포커스가 맞춰졌고, 신중현은 펄 씨스터즈, 김추자를 가요계의 톱스타로 키워냈습니다. 이들은 당시 “신중현 사단”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중현은 본인 스스로도 직접 가수, 기타리스트로서 활약하면서 한국 ROCK음악의 초석을 닦아놓았습니다. 신중현은 한국 최초의 ROCK 밴드를 결성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중현과 엽전들”에 의해서 불리워진 “미인”은 한국 대중가요계의 한 장르인 ROCK 부문에서 역사적으로 높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국민가수”의 계보는 “1920~30년대의 윤심덕, 이애리수, 이난영, 고복수”, “1940~50년대의 남인수, 백년설, 김정구, 현인”, “1960년대의 이미자와 패티김”, “1970년대의 남진과 나훈아”, “1980년대의 조용필”이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굳이 시대별로 한 명씩만 대표적으로 거론할 경우 “남인수(40년대)->현인(50년대)-> 이미자(60년대)->나훈아(70년대)->조용필(80년대)”로 이어지는 계보가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조용필과 이미자가 한국 대중가요 최고의 전설로 추앙받고 있으며, 광복 이전까지 포함할 경우에는 “광복 이전의 가요황제 남인수”와 “광복 이후의 가왕 조용필”이 종종 비교대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사에서 가요 시상식을 정착시킨 1960년대 이후의 대중가요에 익숙한 오늘날의 어르신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이 대표적인 국민가수로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미자, 남진, 나훈아, 조용필로 대표되는 4인방은 어르신 세대뿐만이 아니라 신세대 가요팬들에게도 가요계의 불멸의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는 30대 이하의 젊은층과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극명하게 양분되는 현상을 보였는데, 그래도 “신세대”라 불리는 젊은층에 좀더 주도권이 있었기 때문에 젊은층의 사랑을 받았던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를 대표적인 “빅3”로 꼽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대표적인 5명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태진아, 송대관은 모두 가요계의 대선배이자 전설로서 후배들의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우열을 비교해서 대표주자를 가려내려고 한다면 “빅3”(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로 압축되고, “빅3” 중에서는 다시 서태지와 신승훈이 1990년대의 대표적인 전설로 압축되며, 그 중에서도 단 한 명만으로 압축할 경우에는 서태지가 그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모든 세대의 대중에게 사랑받고, 은퇴 후 또는 사후에도 수십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는 "국민가수"와 "국민가요"가 존재했었는데, 그러한 "진정한 국민가수"의 계보는 1980년대의 조용필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겼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광복 직후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총망라해서 모든 세대의 대중에게 사랑받고, 그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진정한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들은 윤심덕, 이애리수, 고복수, 이난영, 남인수, 백년설, 김정구, 현인,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남인수와 백년설이 가요계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했던 1940년대와 남진, 나훈아가 가요계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했던 1970년대는 가장 뜨거웠던 라이벌 시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40~50년대를 휩쓸었던 "가요황제" 남인수와 광복 직후에 “대한민국 1호 가수”로 등극했던 현인, 1960년대를 휩쓸었던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1980년대를 휩쓸었던 "가왕" 조용필은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전설의 계보에서도 사실상 "왕중왕"에 해당되는 존재로서 추앙받고 있습니다.
한국 대중가요의 100년 역사를 무조건 10년 단위로 끊어서 도식화한다는 것에는 그만큼 불합리성이 작용할 수 있고, 또한 1980년대 이전 세대간 단절현상이 없던 시대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세대의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과거의 “진정한 국민가수”들을 1990년대 이후의 신세대 가수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성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10년 단위로 단 한명씩의 이름만 순차적으로 나열할 경우”에는 “1980년대 조용필의 시대”를 기준으로 해서 “조용필 이전 - 나훈아, 조용필 이후 - 서태지”의 구도가 설정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10년 단위의 대표주자를 한명씩만 나열하면서 인위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할 경우에는 "윤심덕(1920년대) -> 고복수(1930년대) -> 남인수(1940년대) -> 현인(1950년대) -> 이미자(1960년대) -> 나훈아(1970년대) -> 조용필(1980년대) -> 서태지(1990년대) -> 조성모(2000년대)"로 이어지는 계보를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성모를 1990년대 가수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비(Rain) 또는 보아(BOA)를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분류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면서도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불멸의 라이벌 관계”로서 그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지기도 합니다. 팝음악계에서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동시대의 라이벌 관계이면서도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불멸의 라이벌 관계”로서 역사에 회자되는 전설로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역사에서도 그러한 불멸의 라이벌 관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1940년대의 남인수 vs 백년설”, 1950년대의 남인수 vs 현인”, “1960년대의 이미자 vs 패티김”, “1970년대의 남진 vs 나훈아”의 라이벌 관계는 가장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로서의 상징성을 얻고 있으며, 특히 그중에서도 “남진 vs 나훈아의 라이벌 시대”는 그야말로 라이벌의 상징 그 자체로 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가수는 오직 남진과 나훈아뿐이다”는 평론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관계는 동시대의 라이벌 관계이면서도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불멸의 전설로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중장년층 이상의 기성세대들이 가요계의 팬문화에서 소외되기 시작한 가운데, 신세대라 불리는 30대 이하의 젊은층이 가요계의 팬문화의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과거와 같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진정한 의미의 국민가수"의 명맥이 끊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세대"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로 대표되는 3인방이 오늘날의 신세대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존중을 받는 전설로 통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그 신세대 중에서도 10대 청소년과 아이돌 팬덤을 제외한 나머지 대중이나 매니아층이 서서히 가요계의 팬덤문화에서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국내 가요시장 자체도 최악의 침체기를 맞이했고, "전설"이라 불릴만한 톱스타의 부재현상도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전설"의 이미지에 근접한 가요계의 톱스타로서는 "마지막 국민가수" 조성모와 "한류스타, 월드스타"로 부각되는 보아(BOA), 비(Rain)의 이름이 첫손에 꼽히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가요계의 세대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고착화되면서 연령대별로 나타나는 “세대차이”도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넘어갈수록 특정 세대에 의한 가요시장 편중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대중적인 공감대가 점차 약화되어가고 스타급 가수들이나 히트곡의 수명도 점차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10대 청소년들의 관심사는 주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2000년대와 2010년대 이후에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소위 “1세대, 2세대 아이돌”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으며, 그 외에도 “한류스타”, “월드스타” 등의 키워드에 관심사가 집중되는 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청소년 팬층은 특정 스타를 지지하는 “아이돌 팬덤”은 상당한 결집력을 보이는 반면에 나머지 대중들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경향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는 같은 10대 청소년 팬들 중에서도 이들 아이돌 가수와 팬덤에 대해서 상당한 반감을 드러내는 안티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20~30대 청년층에게는 1990년대 당시의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로 대표되는 “빅3”가 여전히 가요계의 대표적인 전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들 “90년대 빅3”와 함께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던 조성모까지 포함한 빅4가 여전히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가요계의 최강자로 인식되고 있고, 오늘날의 아이돌 가수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신세대의 영웅 4인방”도 기존의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어르신 세대들에게는 외면을 받는 뚜렷한 한계점도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어르신 세대들에게는 역시 과거의 “트로트 국민가수”들이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신세대”라 불리는 젊은 사람들은 10년만 지나도 엄청난 세대차이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의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어르신들의 시대에는 세대차이가 오늘날처럼 극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1930~50년대에 사랑받았던 “국민가수”와 “국민가요”들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르신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꾸준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를 마감하고 2010년대에 접어든 오늘날의 시점에서 40대 이상의 연령대를 차지하는 중장년층의 “기성세대”는 주로 1960~80년대의 가요계의 팬문화를 향유했던 세대의 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을 좀더 세분화해서 나눌 경우에는 “7080 추억세대”와 “어르신 세대”로서 나뉘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 “기성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이미자, 패티김, 최희준, 배호, 남진, 나훈아, 하춘화, 조용필 등으로 대표되는 국민가수들이 여전히 절대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들보다 더 이전 시대에 활동했던 “원로급 국민가수”들의 존재감 역시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로 가요계 팬문화의 주도권이 “신세대”에게로 넘어간 이후에도 이들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송대관, 태진아로 대표되는 트로트 가수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신세대”와는 별도의 영역에서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
1970년대의 한국 대중가요는 가요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트로트 부문에서 “남진 vs 나훈아”의 라이벌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하춘화는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군림하며 남진, 나훈아와 함께 연말 가요시상식을 휩쓰는 단골손님이었습니다. 가수 겸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겸 제작자인 신중현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국 ROCK의 대부”로서 대중음악사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가요계 역사를 무조건 10년 단위로 끊어서 대표주자를 한 명씩만 도식적으로 나열할 경우, “1970년대 가요계의 대표주자”를 굳이 단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나훈아의 이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훈아의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존재는 결코 무시될 수 없으며, “남진 vs 나훈아”가 이끌었던 1970년대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라이벌 시대로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진의 히트곡인 “님과 함께”, 나훈아의 히트곡인 “고향역”은 지난 20세기의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통틀어서도 “사의 찬미”(윤심덕), “황성옛터”(이애리수), “타향살이”(고복수), “목포의 눈물”(이난영), “애수의 소야곡”(남인수), “나그네 설움”(백년설), “눈물젖은 두만강”(김정구), “신라의 달밤”(현인), “동백아가씨”(이미자),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등의 노래와 함께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불멸의 히트곡이자 “국민가요”로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곡은
“남진 - 님과 함께”, “남진 - 그대여 변치마오”, “남진 - 마음이 고와야지”, “남진 - 미워도 다시한번”, “남진 - 젊은 초원”, “남진 - 아랫마을 이쁜이”, “남진 - 마음이 약해서”, “나훈아 - 고향역”, “나훈아 - 물레방아 도는데”, “나훈아 - 해변의 여인”, “나훈아 - 머나먼 고향”, “나훈아 - 가지 마오”, “나훈아 - 꿈속의 고향”, “나훈아 - 최진사댁 셋째딸”, “하춘화 - 물새한마리”, “하춘화 - 난생처음”, “하춘화 - 영암 아리랑”, “김추자 - 거짓말이야”, “김추자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문주란 - 공항의 이별”, “패티김 - 이별”, “패티김 - 사랑은 영원히”, “패티김 - 사랑하는 마리아”, “패티김 - 가시나무새”, “패티김 - 빛과 그림자”, “조영남 - 딜라일라”, “펄 씨스터즈 - 커피한잔”, “바니걸스 - 그 사람 데려다주오”, “송창식 - 피리 부는 사나이”, “송창식 - 왜 불러”, “양희은 - 아침이슬”, “트윈폴리오 - 웨딩 케이크”, “이장희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김세환 - 사랑하는 마음”, “신중현 - 미인”, “김세레나 - 갑돌이와 갑순이”, “혜은이 - 당신은 모르실 거야”, “이은하 - 밤차”, “송대관 - 해뜰날”, “최헌 - 오동잎”, “조용필 - 돌아와요 부산항에”, “윤복희 - 여러분”, “윤항기 - 별이 빛나는 밤에”, “이수미 - 내곁에있어주”, “정훈희 - 꽃밭에서”, “김훈 - 나를 두고 아리랑”, “조경수 - 행복이란”, “서수남, 하청일 - 팔도유람”, “김정호 - 이름 모를 소녀”, “어니언스 - 편지”, “키보이스 - 해변으로 가요”, “산울림 - 아니 벌써”, “서유석 - 아름다운 사람”, “한대수 - 물 좀 주소”, “최백호 - 영일만 친구”, “최병걸 - 난 정말 몰랐었네”, “오승근 - 처녀뱃사공”, “전영 - 어디쯤 가고 있을까”, “정종숙 - 새끼손가락”, “장미화 - 헬로아”, “김인순 - 여고 졸업반”, “박상규 - 조약돌”, “이수만 - 그대는 별이었나요”, “유심초 - 사랑이여”, “선우혜경 - 당신 때문에”, “조미미 - 바다가 육지라면”, “정미조 - 개여울”, “이용복 - 어린 시절”, “이현 - 내 사랑 지금 어디”, “투에이스 - 빗속을 둘이서”, “ 옥희- 눈으로만 말해요”, “박일남 - 갈대의 순정”, “정태춘 - 떠나가는 배”, “이상열 - 아마도 빗물이겠지”, “김상진 - 고향이 좋아”, “사월과 오월 - 장미”, “심수봉 - 그때 그 사람” 등의 노래들로 대표되고 있습니다.
----------[부연설명]
@ 남진 vs 나훈아 라이벌 시대 @
=> “남진 vs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는 1960년대 후반에 막을 올려서 1970년대 초반에 최대의 절정에 이른 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두 명의 톱스타가 동시에 최전성기를 누리면서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는 누구에게 대상을 수여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라이벌 구도에서 근소하게나마 우위를 보였던 남진이 연말 가요대상을 휩쓸었습니다.
이 때문에 통계자료에 나타난 기록으로만 살펴보면 남진은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최고 인기가수"를 3 년 연속, "TBC 방송가요 대상"의 "남자가수 대상"을 통산 3회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나훈아의 수상 실적은 "TBC 방송가요 대상"의 "남자가수 대상" 1회에 그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문서자료를 통한 기록으로 과거의 역사를 접하기 때문에 그 시절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다소 왜곡된 전달이 이루어질 소지가 있는 편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1970년대 가요계의 대표주자로 나훈아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남진은 마치 나훈아의 그늘에 가린 2인자처럼 치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는 가요대상 수상횟수만 피상적으로 조사하면서 나훈아가 남진에 비해서 수상실적이 현격한 격차로 밀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 막상막하의 경쟁을 펼쳤고, 그 경쟁구도가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던 시절에 남진이 근소하게 우위를 기록했던 것이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남진과 나훈아의 가요대상 수상 횟수의 현격한 격차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톱스타의 전성기와 라이벌 경쟁구도가 정점을 찍고 나서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든 이후에는 나훈아가 좀더 꾸준한 면모를 보이며 롱런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나훈아는 조용필, 이미자와 함께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거의 모든 기네스 기록의 대표주자로 꼽힐 만큼의 경이적인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최고의 절정에 올랐던 전성기 시절에만 포커스를 맞출 경우에는 "197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스타"를 단 한 명만 꼽으라고 할 때 남진의 이름이 나훈아의 이름보다 좀더 우선적으로 거론되더라도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1960~70년대 당시의 연말 가요시상식에서는 언제나 이미자와 남진이 단골손님으로 휩쓸다시피 했었고 당대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도 남진은 이미자 이후의 최고의 슈퍼스타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라이벌 구도의 우열관계는 사실상 남진의 완승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에서 우열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전성기가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였습니다. 남진은 1980년대 이후로 한동안 활동이 부진하다가 "빈잔"의 히트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반면에 나훈아는 "사랑", "잡초", "무시로" 등의 지속적인 히트곡 퍼레이드로 인해서 "트로트 황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필이 현역 최고의 슈퍼스타로서 가요계를 휩쓸고 있을 때 나훈아는 성인가요(트로트)를 이끄는 대표주자로서 조용필과는 별도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또 한 명의 황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남진 vs 나훈아"의 라이벌 경쟁구도는 전성기 시절에는 "남진의 근소한 박빙 우위", 오늘날까지의 통산 실적에서는 "나훈아의 승리"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가요팬들이나 평론가들이 편의상 10년 단위로 무조건 한 명씩만 나열하는 계보도를 설정할 때 "70년대의 나훈아" -> "80년대의 조용필"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197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오늘날의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는 아예 당시의 시대상 자체를 "나훈아는 1인자, 남진은 2인자"였던 것처럼 오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절의 시대상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서 “1970년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스타”로서의 면모를 살펴봤을 때는 가수 겸 영화배우로서 만능 엔터테이너의 재능을 뽐냈던 남진이 선두주자로 군림했습니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남진은 1인자, 나훈아는 2인자"였다고 설명하는 것이 좀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성기가 지난 이후까지 포함해서 가수 내지는 뮤지션으로서의 종합적인 활동실적에서는 전성기와는 반대로 역전현상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나훈아가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진과 나훈아의 경쟁관계에서의 이러한 역전현상은 2000년대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갤럽 등의 기관에서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의 자료를 토대로 하더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가수"로서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두주자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우세한 편이었습니다. 사실상 이들의 경쟁구도는 "나훈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는 인식이 거의 보편화된 상황에서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또한번 분위기의 반전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훈아는 2007~2008년에 걸쳐서 음해성 악성루머의 중심인물로 떠오르면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뒤, 수년간 가수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한 상태입니다. 반면에 남진은 비슷한 시기에 왕성한 방송활동과 콘서트 활동을 전개하며 다시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11년에 추석특집으로 편성된 "나는 트로트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진은 과감하게 후배들과의 경합에 나서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역시 남진"이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근래의 20~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훈아의 우위가 지속되어왔던 상황에서 남진이 이러한 열세를 일거에 뒤집고 다시한번 자신의 우위로 판세를 뒤집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다소 무리일 수도 있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불멸의 라이벌"로서의 남진과 나훈아의 승부는 아직 완전히 막을 내리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진과 나훈아는 조용필, 이미자와 함께 대표적인 "불멸의 국민가수"로서 전설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출처: 과거 신문기사와 TV 방송 등을 기본 토대로 해서, 인터넷 검색(네이버, 다음, 가수 홈페이지)을 통해서 얻은 정보들을 참고했습니다. 특히, 옛날 가요 부분은 네이버 지식인,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백과 등의 자료에 더욱 많은 부분을 의존했습니다.}
** 원문 작성자 => JOHN CENA ** 원문 작성 날짜 => 2012년 8월 11일 ** 원문 출처 => http://johncena07.blog.me/7014436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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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죽고 싶을 때 죽고 싶다
“난 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찔까?” 이 말만 하면,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이들이 나를 째려본다. 난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는 소리다. 남들처럼 삼시 세끼 꼬박 챙겨 먹는데 53㎏이 뭔가. 보는 사람마다 나보고 말랐다며 어디 아프냐고 하니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내 나이 올해 쉰아홉. 나는 5년여 동안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딱히 아픈 데도 없고, 의료계를 고발한 책 몇 권을 본 뒤로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관리해 주기 위해 건강검진을 하는 게 아니라는 의심도 들었기 때문이다(최근에는 <건강검진의 거짓말>이라는 책도 나왔다). 무엇보다 국가가 그렇게 국민들 건강을 걱정해 준다면, 기업 환경부터 바꾸고 열악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부터 없앨 일이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면 건강한 이도 환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한 가지 사례로 고혈압 수치를 보자. 인간의 몸은 성인이 되면 동맥도 노화로 딱딱해져 혈액을 흘려보내는 힘이 약해진다. 따라서 나이를 먹을수록 뇌나 손발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잘 전달하기 위해 혈압을 높이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120㎜Hg만 넘어가면 위험하다며 약을 권하고 있다(참고로 1987년에는 ‘180㎜Hg’이 정상이었다). 환자 아닌 환자들은 의사가 위험하다는데 약을 안 먹을 수가 없다. 당뇨병 약과 고혈압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다. 그 약 때문에 의료계가 떼돈을 벌었다. 고혈압뿐만 아니라 정상인을 당뇨병, 암환자로 만들어 약을 먹이고 수술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건강검진을 회피해 왔는데 결국 엊그제 건강검진을 받았다. 직장에서 하는 정기검진을 받지 않으면 벌금이 나온다느니 나중에 암이 걸려도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느니(정말 그런가?) 하는 직장 동료의 압력과 아내 등쌀 때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병원에서 혹시 ‘암이 의심되오니 정밀 검사 요합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면 대놓고 무시할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치매를 앓던 어머님이 지난해에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죽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양원에서 어머님이 요양보호사를 할퀴고, 식탁에 있는 그릇이든 컵이든 뭐든지 잡아서 부숴버린다고 휠체어에다 손을 묶어놓은 적도 있다. 묶어놓은 걸 보고 항의했지만 어머님이 할퀴어 가슴팍과 손등에 상처를 입은 요양보호사들만 탓할 수도 없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실 무렵 병원에서 콧줄을 끼우고 강제 급식까지 했다. 의식은 없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는 없을까? 자연으로 돌아가 단순한 삶을 살고자 했던 미국 출신의 경제학자인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단식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치매에 걸린다면? 몸이 마비돼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콧줄에다 강제로 음식을 넣어 목숨을 이어가기는 싫다. 의미 없는 삶 아닌가. 걷고, 말하고, 먹고, 울고 웃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내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삶을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나마 다행이랄까. 지난 1월8일 스스로 ‘연명치료 중단’을 할 수 있는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연명 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강제로 연장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 의료의 중단 조건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임종 단계에 접어든 경우다. 이 법은 2018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란다. 하지만 지금도 자기 의료를 결정할 수 있는 사전의료의향서가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연명 치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순간을 대비해 미리 내 의사를 밝혀 두는 문서다. 정신이 있을 때 내용을 변경할 수도 있다. 이 문서를 지난번에 써놓고 아직 가족의 동의와 공증을 받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받아놓아야겠다. 아내와 아들이 흔쾌히 동의해 주겠지?
<안건모 | ‘작은책’ 대표> -----2016-04-05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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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관련 소식
1. KT, 클래식 공연으로 아름다운 나눔 실천....KT 체임버 오케스트라 공연 5월11일 개최
KT 체임버 오케스트라 특별공연이 오는 5월 11일 저녁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이택주 이화여대 교수가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김용배 추계예대 교수는 콘서트 가이드로 나서 유익한 해설과 스토리텔링을 더한다. 피아니스트 이효주와 소프라노 강혜정 협연도 기대를 모은다. 티켓 판매 수익금은 난청 아동을 지원하는 ‘KT 소리찾기’ 등 KT 사회공헌 활동에 전액 사용된다. 공연 당일 올레 TV를 통해 공연 실황도 중계된다.
티켓 가격은 R석 7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이다. 올레 멤버십 50%, 초·중·고 30%, 단체 10% 할인이 제공된다.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www.sacticket.co.kr)와 인터파크 티켓 예매 홈페이지(ticket.interpark.com)에서 예매 가능하다. KT는 2009년부터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클래식 전문 공연장 KT 체임버홀을 운영하고 있다. 398석 객석 규모로, 현재까지 누적 관객이 7만 명에 달한다. KT는 “더 많은 국민과 의미 있는 문화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기획했다”며 “향후에도 찾아가는 공연을 중심으로 ‘문화가 있는 날’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2. 안드레아 보첼리, 6년만에 내한..수익금 기부한다 2010년 방문 이후 시네마월드투어 일환5월1일 단 하루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작년 발표음반 '시네마' 수록곡 등 들려줘티켓판매금 일부 시각장애아동 위해 써
천상의 목소리란 수식어가 붙는 세계적 테너이자 팝페라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오는 5월 1일 저녁 7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번 내한공연은 지난 2010년 방문 이후 6년만으로 지난해 발표한 영화음악 앨범 ‘시네마’에 수록한 곡들로 꾸미는 ‘시네마 월드투어’의 일환이다. 그는 공연에 앞서 지난달 30일 주최 측에 “나와 같은 장애를 가졌지만 음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게런티 일부를 기부할 의사를 밝혀왔다.
주최 측 관계자는 “시네마월드투어의 티켓수익금 일부를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한편 음악으로 희망을 전하는 시각장애음악가들을 공연장에 초청하기로 했다”며 “관객이 함께 기부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오페라계 수퍼스타들의 공연을 맡아 활동 중인 유진 콘의 지휘와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마에스타 콰이어 그리고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안드레아 그리미넬리가 참여한다. 보첼리는 사고로 찾아온 시각장애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음악에 대한 꿈을 이룬 아티스트다. 1997년 발표한 앨범 ‘로만차’의 수록곡이자 사라 브라이트만과의 듀엣곡 ‘타임 투 세이 굳바이’로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또 팝페라 외에도 정통 클래식 음반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세이크리드 아리아스’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정명훈과 주빈메타, 로린마젤 등 클래식계 거장들과 음반을 녹음한 바 있다. 티켓 가격은 11만5000~29만원이다. 인터파크(1544-1555) 에서 구매하면 된다. 02-6348-6077.
3. 시몬스 "세계최초로 광고에 예스터데이 음원"
시몬스는 세계 최초로 비틀즈의 명곡 '예스터데이'(Yesterday) 음원을 삽입한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광고는 실존했던 위인이나 유명인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숙면이 가진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시몬스의 광고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시몬스는 예스터데이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작곡됐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해 광고를 기획했다. 특히 자체 음반 홍보 영상물을 제외하면 광고에 예스터데이 음원 사용을 정식으로 허가받은 광고는 이 광고가 유일하다고 시몬스는 설명했다.
시몬스 침대 관계자는 "세계적 명곡 예스터데이의 음악적 영감이 꿈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스토리는 매우 매력적"이라며 "이번 광고를 통해 숙면의 힘과 가치에 대한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4. 7080 팝의 요정 올리비아 뉴튼 존 내한공연 확정
청순하고 우아한 보컬, 금세기 최고 팝의 요정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John)이 16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공연기획사 월드쇼마켓은 티브이데일리에 “70~80년대를 대표하는 팝계의 아이콘이자 환경운동가, 여성건강증진운동가로서도 활약하고 있는 팝의 여신 올리비아 뉴튼 존의 내한공연을 오는 5월 14일 오후 5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15일 부산 KBS홀에서 개최하기로 최종 확정됐다”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10년 내한공연을 준비했지만 당시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공연이 무산된 바 있다. 그의 이번 내한공연은 2000년 8월 첫 내한공연 이후 두 번째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73년 발표한 폴 윌리암스의 곡 ‘Let Me Be There’로 데뷔했다. 이 데뷔곡으로 그는 빌보드 싱글 차트 6위, 캐나다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데뷔곡으로 1974년 제16회 그래미상 컨트리 & 웨스턴 부문에서 최우수 보컬리스트, ‘아카데미 오브 컨트리 뮤직’에서 최우수 여성싱어로 선정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데뷔와 동시에 이처럼 큰 성과를 거둔 예는 흔한 경우가 아니다. 출발 지점부터 그는 스타성을 여지없이 발휘한 셈이다. 그는 이어서 1974년에 발표한 ‘I Honestly Love You’로 제17회 그래미상 올해의 레코드상, 최우수 여성보컬리스트상을 받았다. 이 노래는 또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싱글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호응을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978년에는 존 트래볼타와 함께 출연한 뮤지컬 영화 ‘그리스’의 대성공으로 대중적으로도 크게 알려졌다. ‘그리스’의 음악은 할리우드 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음악으로 꼽힌다. 또 ‘그리스’는 그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미국에서만 무려 1억 6천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는 3억 949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후 1981년에 발표한 곡 ‘피지컬’(Physical)은 빌보드 역사상 신기록을 수립한다. 팝 역사상 빌보드 차트에서 10주간 1위를 차지했던 곡은 세 곡이 있다. 55년에 페레조 프라도의 ‘Cherry Pink And Apple Blossom White’와 77년에 데비 분이 노래한 ‘You Light Up My Life’, 그리고 ‘Physical’이다. 이 곡은 81년 10월 3일에 차트에 든 후 10주간 1위를 차지하였다. 이 곡은 그를 팝계의 전설 반열에 올려놓았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올해 만 67살. 하지만 환경운동, 건강증진운동 등 사회기여활동을 꾸준히 펼친 탓인지 여전히 ‘팝계의 만년소녀’로 불린다. 그는 오랜 동안 환경문제 해결과 동물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 왔다. 1992년 유방암 투병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여러 자선 단체와 건강 상품, 모금 운동에 참여하는 등 건강에 대한 관심을 촉진하는 사회 운동을 활발히 하였다. 가수활동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그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휴양지 ‘Gaia Retreat & Spa’를 운영하고 ‘코알라 블루’의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등 사업도 하고 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자신의 데뷔곡 ‘Let Me Be There'를 비롯해 대표곡 ‘피지컬’, ‘여름밤’(Summer Night), ‘매직’(Magic), ‘아이 어니스틀리 러브 유’(I Honestly Love You), ‘해브 유 네버 빈 멜로’(Have You Never Been Mellow) 등을 부를 예정이다.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그는 한국 팬들이 좋아하는 곡을 찾아 손수 연주 목록을 작성하고 편곡하고 있다”며 “한국 팬을 위한 특별 무대도 준비 중이다”라고 전했다.
5. 역사 속으로..美 '아메리칸 아이돌'이 낳은 팝스타 4人
미국을 넘어 세계 오디션 프로그램의 상징이 된 폭스TV ‘아메리칸 아이돌’이 14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즌 15의 결승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2002년 첫 전파를 탄 ‘아메리칸 아이돌’은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 실력을 뽐낸 뒤 공개적으로 평가를 받고, 시청자에 의해 순위가 갈리는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되며 시작부터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당시 1주당 평균 3천110만 명에 이르는 시청자를 확보했을 정도로,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이는 천문학적 수치의 광고 수익과도 직결됐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머라이어 캐리, 스티븐 타일러, 제니퍼 로페즈 등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심사위원으로 거쳐 간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비욘세, 레이디 가가, 리한나 등 팝스타들이 ‘피날레’ 무대를 꾸미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낳은 스타의 화제성에 대해서는 말하기 입 아플 정도가 아닐까. 초대 우승자 켈리 클락슨에서, 빌보드가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컨트리 앨범의 주인공 캐리 언더우드는 물론,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제니퍼 허드슨을 비롯해, 록밴드 퀸의 프론트맨으로 활약 중인 아담 램버트까지. 빌보드 차트를 포함해 각종 음악 차트를 석권하고, 전 세계적으로 활동을 넓히며 음악계의 역사를 함께 한 스타 4인방을 조명해봤다.
◇ 이제는 심사위원 :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 시즌1(2002) 켈리 클락슨은 ‘아메리칸 아이돌’과 운명적인 시작을 함께 했다. 시즌 1의 도전자로 참가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오디션 당시 특유의 파워풀한 보컬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후 그녀는 ‘팝의 여신’으로 우뚝 섰다. 데뷔 싱글(A Moment Like This/Before Your Love)은 발매 즉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며, 뒤이어 내놓은 데뷔 앨범으로도 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집 앨범 수록곡인 ‘비코즈 오브 유’(Because Of You)라는 곡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녀는 매 앨범마다 작곡 및 작사에도 참여하며 열정을 이어왔다. 자신만의 음악관을 확립했다는 평을 듣는 켈리 클락슨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상을 선물 받기도 했다. 이번 ‘아메리칸 아이돌’ 마지막 시즌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스타 발굴에 총력을 기울였다.
◇ 드림 걸즈: 제니퍼 허드슨(Jennifer Hudson) / 시즌3(2004) 제니퍼 허드슨은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 출연 당시, 이렇다 할 기록을 내지는 못 했다. 초반에는 남다른 가창력을 강점으로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됐으나, 7위에 머물러야 했다. 2년 뒤, 반전이 일어났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 우승자인 판타지아를 누르고, 영화 ‘드림걸즈’의 주요 역할인 ‘에피 화이트’에 캐스팅된 것. 제니퍼 허드슨의 잠재력은 이때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이라는 한 곡으로, 그녀의 인생은 뒤바뀌었다. 소름 끼치는 보컬과, 눈을 사로잡는 연기력으로 대중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 결과, 온갖 연기상을 휩쓰는데 성공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까지 집어삼켰다. 중간에 아픈 가족사를 겪기도 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음악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컨트리의 대명사 : 캐리 언더우드(Carrie Underwood) / 시즌4(2005) 캐리 언더우드는 시즌 4 우승자다. 심사위원 군단을 울릴 정도의 발군의 기타·피아노 연주 실력으로도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다. 무엇보다 컨트리 진영의 의미를 새로 썼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녀의 데뷔 음반(Some Hears)은, 컨트리 앨범으로는 가장 빠르게 판매된 기록을 갖고 있다. 1집은 물론, 2집(Carnival Ride)과 3집(Play on) 모두 빌보드 차트 정상을 휩쓸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2007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고, 컨트리 보컬 부문 및 컨트리 영역 5개의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미국의 ‘국민 여가수’로 발돋움한 그녀는,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젊고 존경받는 스타로 지목받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1년에는 영화 ‘소울 서퍼’(Soul Surfer)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경력도 넓힌 바 있다.
◇ AI+AL=‘Glam’ : 아담 램버트(Adam Lambert) / 시즌8(2009) ‘아메리칸 아이돌’(AI)과 ‘아담 램버트’(AL)의 만남은 더할 나위 없었다. 시즌을 거듭해오며 조금은 루즈(loose)해진 프로그램은, 아담 램버트라는 보석을 만나 전에 없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확고한 스타일과 압도적인 가창력을 버무린 존재감으로 아담 램버트는 각국 시청자의 마음에 다시금 열정을 꽃피우게 했다. 이와 동시에, ‘재능 넘치는’ 청년이었던 그의 삶도 180도 바뀌었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8 준우승 후, 2달 만에 내놓은 데뷔 앨범(For Your Entertainment)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멀티 플래티넘 기록을 세웠다. ‘그래미 시상식-올해의 노래’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도 안았다. 2집(Trespassing), 3집(The Original High) 모두 빌보드 1위에서 3위까지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이외에도 ‘골드 레코드’ ‘1억 스트리밍’ 등 성적을 써 내려갔다.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아담 램버트는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가수 중 2015년 한 해 수익 1위(약 1천만 달러·한화 약 120억 상당) 를 달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위의 언급한 캐리 언더우드가 2위, 켈리 클락슨이 5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파이널 퍼포먼스를 위해 신곡(Welcome To The Show)을 공개하는 등, 의리를 이어갔다. 한편, ‘아메리칸 아이돌’이 폐지를 맞은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상승 및 시청률 감소라고 미국 언론들은 지적했다.
-------김풀잎 기자 leaf@tvreport.co.kr / 사진=앨범 커버, 영화 스틸컷, 트위터, 소니 뮤직, 워너 뮤직 제공
금주의 신곡 (신보 - 앨범) (2016-04-02 ~ 2016-04-08)
-----국내곡 신곡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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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빌보드 싱글 챠트
(매주 목요일 (현지시각) 발표되며...발표일자는 다음주 토요일 기준으로 표기됨) (2016-04-1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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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방송국) 소식
새 CJ 첫방송이 있었습니다.....
CJ갈산고님
CJ단미님
그리고 CJ세나 님께서 복귀방송으로 인사드렸습니다.....
수고를 보태주시는 세 CJ님들께 감사의 맘 보냅니다...... 방송이 늘 즐거움이길 바라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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