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배 샘의 시 읽기 전략
(1) 제목을 놓치지 말라.
모든 글이 그렇듯이 제목은 글의 주제와 관련된다. 특히 시의 제목은 그 시의 중심
소재
를 의미하거나 주제를 직접 드러낸다. '진달래꽃(김소월)', '광야(이육사)', '눈물(김현승)' 등의
제목은 각 시의 핵심
소재 혹은 이미지에 해당하고, '향수(정지용)', '참회록(윤동주)'의 제목
은 주제와 관련된다. 그렇다면 수능 시험에서 왜
제목을 밝히는지 알겠느뇨?
제목: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산유화(김소월), 새(박남수), 갈대(신경림), 바위(유치환) 등
주제:
추일 서정(김광균), 초혼(김소월), 그 날이 오면(심훈), 그이 행복을 기도드리는 (신
동엽) 등
실제로 시의 제목은 중심 소재와 관련된 경우가 훨씬 많다. 이제 시에서 제목이 왜 중요한
가
알아보자.
(2) 시는 이미지이다.
앞에서 시의 제목은 중심 소재를 보여준다고 했다. 결국 제목이 그 시의 핵심 이미지라는
말이다. 김현승의 '눈물'은 '은전 한 닢'에서 거지가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조지훈의 '봉황수'
에서 나온 '눈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김현승의 '눈물'은 뭘까? 흔히 하는 말로 함축적 의미
는 무엇인가? 먼저 눈물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자.
사람이나 짐승의 눈을 맑은 상태로 젖어 있게 하거나, 사람이 슬프거나 감격할 때 많아져서 눈 밖으로 흘러나오는 맑은 액체 상태의 물질.
이걸 안다고 김현승의 '눈물'이 가진 함축적 의미를 이해할까? 천만에! 일단 여기에서 이렇
게 기억하자. 이미지는 그냥
단어가 아니고, 수식어로 형상화되어야 이미지가 된다. 일상 생
활어로서 '꽃'은 거의 똑같은 '꽃'이다. 그러나 시에서 '꽃'의 의미는
다르다. 이육사의 '꽃'과
김춘수의 '꽃'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가? 다음에서 살펴보자.
(가)
(나)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 한 방울 내리쟎는 그
때에도
그는 나에게로 와서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꽃이
되었다.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이육사의 '꽃'
1연)
(박두진, '꽃' 2연)
이 시를 읽고 (가)와 (나)의 '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겠는가? 알았다면 어떻게 다른지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꽃'은 분명히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의 함축적 의미를 알면
주
제는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3) 이미지에 수식어를 붙여 보라.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고 시어, 즉 이미지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를 꾸며주는 수식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앞에서 (가)와 (나)의 '꽃'이 지닌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
단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가)의 '꽃' ① 비 한 방울 내리쟎는 그 때에도 빨갛게 피는
꽃
②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이 피는 꽃
①에서 '비 한 방울 내리쟎는 그 때'는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는 극한 상황이다. 그런
데도 '꽃'은 빨갛게 핀다.
그렇다면 '꽃'은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 혹은 삶의
의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②에서 '내 목숨을 꾸며'는
이미 '꽃'은 바깥 세계
의 사물이 아니라 화자인 '나'와 동일시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한
상황으로 인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시의
창작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꽃'은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상황과 대결하는 정신적 높이를
의미한다.
(나)의 '꽃' 내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 온 꽃
이 시의 1연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이름이 아직 붙여지지 않은 사물은 그 자체로서 존재
하고 있을 뿐이지 다른 존재 '나'에게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줘야 비
로소 그 사물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꽃'은 어
떤 가치 있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존재이다.
이미지에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작가가 핵심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
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화자(결국에는 시인)의 태도, 정서, 심리 등을 파악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궁극적으로 주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4) 시는 반복이다.
우리는 시를 운문 문학이라고 한다. 운문 문학이라고 하면
운율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면 운율은 무엇인가? 운율은 반복이다. 무엇이 반복되는가는 시에 따라 다르다. 어떤 시는
똑같은
음운(자음과 모음)을 반복하고, 어떤 시는 비슷한 구조를 가진 문장을 반복한다. 시
조는 각 장이 4음보의 율격(네 마디로 끊어 읽기)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에는 비슷한
시간 길이의 반복이 된다. 하여튼 운율은 반복이다.
① 갈래갈래 갈린 길 / 길이라도 /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김소월, '길' 7연)
②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풀 아래 속삭이는 샘물같이(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
발')
①은 'ㄹ'이 반복되고, ②는 짜임이 비슷한 구절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운율은 반복이 되
는 것이다. 운율은 시를
읽거나 들을 때 흥겨움과 리듬감을 느끼게 하고, 시의 의미와 어울
려 독특한 어조를 만들기도 한다.
왜 똑같거나 비슷한 말을 반복하겠는가? 반복은 주제나 시의 의미를 강조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정주, '추천사' 3연)
구름처럼, 더욱이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채색한 구름처럼 이 세상을 벗어난 하늘로 자신
을 밀어 올려 달라고
화자(춘향)는 말한다. 아무 막힌 것도 없이 무한히 넓은 세계를 동경하
는 화자의 갈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밀어 올려
다오'를 3회 반복한 것은 화자
의 갈망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시는 대립이다.
시가 대립이라고 하니까 시 속에는 갈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라. 시가 대립이라는
말은 시 속에는 대립적 이미지가
많이 제시된다는 말이다. 대립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유형
은 다음과 같다.
① 현실과 이상
: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서정주,
'추천사')
② 겨울과 봄: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
어나듯이
(윤동주, '별 헤는 밤')
③ 순수와 비순수: ㉠ 눈을 바라보며 /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새')
④ 차가움과 따뜻함: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신석정. '꽃덤불')
⑤ 가해자와 피해자: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김수영. '풀')
다음 시는 밝음과 어두움의 이미지가 대립되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신석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2연의 일부)
아스팔트에 그려진 노란 선! 이것을 이 시에 적용해 보자. '아스팔트'가 '검은 치맛자락'이
라면, '노란
선'은 '촛불'이다. '촛불'이 밝음이라면 '검은 치맛자락'은 어둠이다. 물론 화자가
아직 '촛불'을 켜지 말라고 했으므로 '촛불'은
긍정적 의미와 거리가 말다고 해석될 수 있다.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중략)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 (김규동, '나비와 광장' 1, 4연)
이
시에서 대립적 이미지는 '활주로'와 '아름다운 영토'이다. '활주로'는 흰나비가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보'는
곳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토'는 나비에게
'화려한 희망'을 갖게 하는 '미래의 어느 지점'이다. 결국 이 시는 폐허화된 현실에서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6) 화자를 주목하라.
시에서 시적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시적 화자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시적 화자는 주어진 현실에 대해서 절망
하거나 체념할 수도 있지만,
정면으로 맞서서 극복하려고도 한다. 이처럼 시적 화자가 주어
진 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시적 화자의 태도'라고 한다.
먼저 화자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다음 시를 보자.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중략>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
케 될지니. /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
든 /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유치환, '생명의 서')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생명이
부대끼'는 '병든 나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화
자는 지금까지 지식으로 모든 의문을 해결할 수 있으며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
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지 못하면 차라리 회한 없이 죽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이
러한 시적 정황으로 보아 화자는 본래의 자아를 찾기 위해 자신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내던
져 기꺼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6) 어조를 주목하라.
어조는 가전제품의 플러그와 같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싶으면 그 플러그를 꽂아야
한다.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어조가 화자의 태도와 잘 어울려야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여기에서
는 '보내 드리오리다'가 제격이다.
그래서 어조는 서술어의 종결 어미에 잘
나타난다. 우리말의 종결어미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를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평서형, 의문형, 감탄형, 청유형, 명령형도 종결어미의
차이
에서 오는 것이다.
다음은 윤동주의 '십자가'이다.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
다.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는 뭔가 용기가 부족하고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이지만,'조용히
흘리겠습니다'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의지를 잘 보여준다. 2연은 삶의 목표와 시
적 화자의 거리감(인간의 고뇌, 갈등)을 '저렇게',
'어떻게'라는 시어와 의문형 종결 어미로
써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5연은 구원을 위한 희생의 결의를 담고 있다.
'한글 > 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견새 (0) | 2016.04.18 |
---|---|
歸蜀道 (0) | 2016.04.18 |
[스크랩] 소월 시, 신화적으로 읽기 (0) | 2016.04.16 |
[스크랩] 시읽기의 비법(1) (0) | 2016.04.16 |
[스크랩] ?기형도에 관한 추억을 나열하기 위해 쓴다 / 성석제 (0) | 2015.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