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권오정 시인의 시세계
신선한 선율처럼 곱다
박가을(시인 ․ 문학평론가)
詩의 결말과 그 끝은 創造의 의미를 구성하는 뜻마다 글 꽃은 피어나고 싹이 돋음 같이 청초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다가온다.
어쩌면 인생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의 形象과 생각이 다름과 같이 시인의 가슴에서 분출된 詩語도 그 뜻과 깊이가 색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굴곡을 넘나들며 타고난 지혜의 연장술, 즉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의 어휘에 대한 개념과 신념의 심지가 곧은가에 따라 다르다. 남다른 文章力은 스스럼없는 자아도취 속에서 내면을 꺼내는 습관이 중요하다.
詩想의 오묘한 개념은 감춰두기보다 발설을 통해서 단어의 정제된 음률을 투영할 때 간결한 글밭에 뿌려 놓은 각색된 언어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그만큼 낱말의 調和는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 할 수 없는 수학의 방정식과 같다 하겠다. 그리기에 시인의 늘 목마른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 또 다시 시장기를 느끼는 갈증은 시인만의 독특한 성격이라 하겠다. 해서, 자신만이 터득하고 갖추 놓은 시향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늘 혼자라는 고독한 감흥에 시달려야 한다.
사물의 척도는 높고 낮음이 아니라 곁가지에 맺혀있는 이슬방울의 섬세함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 觀察力은 詩想을 깊게 만들어 준다.
글의 씨앗은 어디에 뿌려 놓는가에 따라 그 색체가 다르다 하겠다. 이는 言語의 律動과 낱말과 낱말의 교차점은 시인만이 표현하고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內面의 세계를 탐독하며 글맛의 점령군처럼 칼을 뽑아 문장의 요리하는 솜씨, 여기 권오정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꽃은 청산에서>는 칼집에 넣었던 글맛, 그 예리함을 간을 볼 수 있음이다. 단아한 文體와 간결한 語彙는 무 조각을 예리한 칼 끝으로 잘라놓은 듯 조화롭게 시어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自然의 섭리 안에서 거스르지 못하고 順應하며 지탱해가는 習作의 의미는 나만의 고집을 비워 놓고 바람 곁에 자신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청산에 서 있는 한 시인의 모습을 봤다. 시어의 낱말에서 느껴오는 신선한 선율은 기쁨을 노래하며 밀밭에서 국수 가닥을 막 뽑아 놓은 것 같다. 달고 정겹다. 권오정 시인이 뱉어 둔 시어는 금방 꽃망울을 터트리듯 喜悅을 느끼게 했다.
1. 절제된 표현은 자유다
바람 부는 언덕에
춤추는 꽃나비
꽃잎마다 환희의 몸짓
황홀한 꽃구름
눈처럼 날리는 꽃비 맞으며
내 생의 마지막이어도 좋으리
휘늘어진 꽃가지
꽃가루 분분 쏟아지는 나무아래
오늘 나 죽어도 좋으리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
꽃물결 일렁이는 언덕에 누워
황죽 청죽 필~ 닐리리
피리 불며 갈거나
꽃 이불 꽃 무덤
아릿한 꽃향기 따라
영~ 아주 갈거나
피리 불어 갈거나
- 「꽃 청산 언덕에 올라」 全文
선택은 자유다. 선택되기까지의 苦盡甘來는 내 몫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봄날에 피어나는 꽃술에 피어난 향기는 따사롭다. 인생의 굴곡은 개미집을 쉼 없이 쌓고 또 쌓아도 그대로인데, 눈 돌릴 틈 없이 걸어가야 한다. 허허로이 떠나는 여행길에서도 문득, 家舍가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싶다. 화자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세상을 유영하고 싶음이다. 신체의 비밀을 감추고 시어의 낱말을 부둥켜안고 격정의 세월을 쌓아가고 있음이다. /꽃잎마다 환희의 몸짓…… /눈처럼 날리는 꽃비 맞으며/…… 내 생의 마지막이어도 좋으리/
마지막은 화려하다. 아니 화려함보다 쓸쓸하다. 나약한 인간의 한계는 언제나 그 틀 안에서 속앓이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환희의 몸짓처럼 성숙된 여인으로 시인으로 걸어온 길, 순결함이 배여 있다. /저 파르르 떠는/알 수 없는 몸짓은/기쁨인가/서러움인가(「살구 꽃 미소」 中에서). 간결한 서체에서 기쁨과 서러움의 교합은 살구꽃의 고운 살결처럼 감미롭게 다가 왔다 떠나버린다. 시인은 살구꽃에서 수줍음을 느꼈을 것이고 꽃의 화려함보다는 그 안에 장식된 섬세함 발견했을 것이다.
소유치 못할 그림인가
차라리 먼데서 그리리라
먼 산처럼 그릴레라
바람에 휘늘어진
나리꽃가지 버려두고
꽃은 뚝뚝 지는데
내 그리움도
저버리게 두리라
다시 또 내게
봄은 왔건만
어쭙잖게 인색해야 할
소유치 못할 봄
바람결에 보내야할
아린 봄.
-「소유하지 못할 사랑」 全文
소유는 끝이 없다. 갖고 싶은 욕망은 창조주가 인간의 형상을 만들 때, 여자를 남자의 갈비 뼈을 취해서 여자로 만드셨다. 이미 그 때부터 소유라는 개념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순수한 인간을 바라셨던 분의 뜻과 다르게 죄의 싹이 돋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나그네의 발길에도 가는 길목마다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 만나는 幸運을 기대할 것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만들어 진다. 나 혼자만의 독단은 고독이라는 단어에 묶임을 당한다. /소유치 못할 그림인가/차라리 먼데서 그리리라/먼 산처럼 그릴레라/ 이는 절제된 틀 속에서 자유와 분방함에 벗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소유의 개념이 바뀌게 될 것이다. 화자는 언제나 혼자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봄바람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은 충동, 벽에 걸어 둔 피카소의 그림처럼 소유하지 못한 안타까움은 늘 일상에서 맛보고 있으리라. /청정한 공기 속에서만 숨 쉬는 너/향기 그윽한 아이리스/(「아이리스」 中에서). 아이리스의 뜻 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무지개를 만드는 女神’ 이라는 뜻의 꽃이다. 화려한 자태보다는 그 꽃말처럼 오묘함과 神聖함이 있다.
새롭게 다가오는 詩心은 옷매무새를 흩트리고 싶은 봄, 봄의 느낌이리라. 달콤한 속삭임은 無言의 세상을 동경하고 그 세상에서 펼치고 싶은 꿈은 나비가 되고 바람이 되어 꿈틀대는 감성을 날려버리게 된다. 여기 시인의 시어처럼 소유하고 싶고 부둥껴 안고 싶은 사람, 그대도 갖고 있는가, 없다. 없어…… 그러기에 인생길은 언제나 혼자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중략)/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中에서).”
화자는 외로울 때, 믿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 내 마음을 보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듯 다가 올 수 있는 친구, 세상의 틀은 맞춤형 같은 문짝처럼 보일지라도 그 틈에서 빛은 비추고 있다. 시인의 고백처럼 그런 사람은 낱말의 표출된 언어에서 틈이 보였다.
2. 숨김은 미학이다
눈비비고 일어나 나팔 불고요
무궁화 꽃 필 때 숨바꼭질 하고요
호박꽃 꽃술로 호박떡 하고요
땅속 유리 속에 알록달록 채송화
강낭콩 붉은 잎은 입술에 붙이고
나리꽃 꽃술 따다가 손톱에 칠하고
백일 지워지지 말라고 백일홍에 기도하고
소낙비에 싱그러운 다알리아, 키 더욱 커지고
자주색 작약 꽃은 엄마 얼굴
꽃 뒤에 숨었다 보였다
문고리에 꽂은 패랭이꽃 세 송이
할머니가 점치는 꽃
꽃이랑 나비랑
이 꽃 저 꽃 팔랑팔랑
날마다 날마다
숨바꼭질 장난질.
-「꽃과 숨기」 全文
시인의 애틋한 마음씨가 예쁘다. /빨간 주머니 조롱조롱 금낭화/내 어릴 적 친구 명자, 빨간 입술(「내가 꽃이고 싶은」 中에서). 꽃을 보면 가엾어 보여서다. 화자는 여기서 꽃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숨겨 둔 비밀을 고백하고 있다. 글씨가 살아서 꽃이 되고 어린 시절 손곱친구 ‘명자’가 생각나니 말이다. 순백했던 시절의 回想은 달콤한 솜사탕처럼 내면 안에 녹아졌으리라. 빨간 주머니 속 금낭화, 흐트러짐 없이 초롱초롱한 맵시, 그 순결함이 시인의 삶은 시어 속에서 태동하고 있다. 눈을 감고 다고고시 앉아 추억을 생각만 해도 달콤함에 묻힐 것이다. 아름다운 回想은 늘 가슴가득 그윽하다.
나만이 숨고 싶은 곳, 백일홍처럼 白日동안 기도로 피어났으리만큼 곱다. /땅속 유리 속에 알록달록 채송화/ 강낭콩 붉은 잎은 입술에 붙이고/ 나리꽃 꽃술 따다가 손톱에 칠하고/(중략). 언어의 접목은 화려한 외출의 표현보다 절제되고 단절된 표출로 그 맛이 닮아있다. 붉은 입술은 화자가 여러 해 동안 붙이고 지우고 했던 변장술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색다르게 보여준 붉은 입술, 시인의 정열은 꺾지 못하고 있다. /옷자락 꿈 자락 날리며 꿈길 같은 길을 따라/날마다 날마다/ 길을 나선다/(「꿈길」 中에서). 누군가 손짓하면 금방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충동이다. 욕망, 그리움이다. 세월의 안타까움은 쏜 끝에 빨갛게 꽃술을 칠하고 싶은 만큼 시인은 목이 마르다. 권 시인의 가슴은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영혼은 투명하다.
시인은 어둔 그림자를 숨기고 있으면 맑고 고운 음성을 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어는 함축되고 정제된 시적 표현은 숨김에서 비롯된다. 함축의 의미는 글씨를 단절하고 연결된 문장을 암시적, 묵시적 스캔들처럼 묻혀있다. 해서 시적 감상력은 화자가 나타내고자하는 문장의 실천적 모형보다 독자가 느끼는 감성은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同年輩라 할지라도 독자들이 갖고 있는 사상적 상상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리움이다.
비가 오는데
억수장마 지는데
내려도 내려도
젖지 않는 가슴은
어인 심사인가
한 달 열흘
물위에
세상이 떠다녀도
차지 않는 마음은
오호라
비인 가슴
洞空이 생긴 것가
水孔이 파인 것가.
-「갈증」 全文
詩 밭에 뿌려 놓은 詩語를 타작해서 가슴 밭에 쌓아 놓았어도 허전하다. 차지 않는 감성을 추체 할 수 없으리만큼 속성으로 고백해도 외로움은 끝없이 쌓인다.
세월은 그만큼의 나이테를 넓게 굵게 상체기로 남겨 두지만 /비인 가슴/洞空이 생긴 것가/水孔이 파인 것가./
화자는 그 끝은 보지 못했다. 여인의 치막폭은 바람이다. 알싸한 봄바람도, 향긋한 가을바람도 흥건하게 적셔주는 소낙비 바람도 이, 겨울을 비껴가지 못했다. 지혜로운 사람만은 세월의 상체기를 싸매고 스스럼없이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美學을 갖는다. 어쩌면 숙명처럼 받아드린다. 지천에 깔려 있는 빗방울도 보석같이 내 안에 간직할 때, 시인은 비로소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결말, 고독이라는 단어, 무지개 핀 언덕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발견한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
나를 숨기지 말라, 나를 버리지 마라, 투명한 수채화에 비치는 내 형상을 그려두고 시간 속을 유영하자. /환희의 탄성 /철따라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들/오직 나의 기쁨 /그대 꽃이여!(「나의 정원」 中에서). 환희는 맛을 본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 누구나 만들고 다듬는다면 느낌대로 맛을 볼 수 있음이다. 해서, 내 안에 기쁨이 되고 내 영혼 속에 잠자고 있는 생각을 깨우는 거다. 이 아름다운 꽃모습은 내가 아니던가,
화자는 갈증을 느낄 만큼의 작은 수고, 책장을 넘기며 억수같이 퍼 붙는 소낙비, 내가 배출한 배설물일 뿐이다.
3. 느낌은 비애다
오늘도 나는
너희 싱그러운
푸른 잎사귀 곁에서
숨 쉰다.
-「나의 정원」 中에서
낱말과 낱말은 그 쓰임에서 느낌이 다르다. 색다르게 만드는 작업일지라도 숨겨둔 비수가 가슴에 꽂이 듯 생각이 아리다. /싱그러운/푸른 잎사귀 곁에서/ 숨 쉰다/ 단 한 번의 외출은 용서다. 뚝, 떨어지는 잎사귀의 절규는 또 다른 화자를 발견 할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표현은 자유다. 하지만 그 표현된 언어는 死藏 되고 만다. 붙이고 깨끗하게 닦고 얼기설기 엮은 돈다발,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그 공허함은 오금을 저리게 하며 두탁해진 입술은 굳게 닫히게 한다. 시인은 편한 숨을 쉰다. 안도함에 너그러움에 빠져 있다. 꿈틀거리는 글의 씨는 그 쉼도 용납하지 못한다./쏴아~/밤새 애원하듯 들려오는/절절한 소리는/어느 태곳적 소리이더냐/별 헤이고 별지는 밤 /달빛은 물이 되어 흐르고/파도는 너는 왜/가슴팍에 파고들어 나를 적시느냐(「파도」 中에서).
움찔대는 파도는 화자에게 의문을 던진다. “대체 그가 누구요?” 답이 없다. 화자가 말하는 태곳적 소리가 막혔음이다. 시인은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싶음이다. 가슴팍을 적시도록……. 절제된 시적 표현이 곱다. 太初부터 사람의 形象을 創造했을 때부터다. 踏襲하고도 말이다. 原初的 本能은 하늘이 활짝 열리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 있으리라. 서정적인 시어를 부르려는 단초는 화자가 글을 다루려는 시인의 苦行이다. 공통된 낱말의 구사는 응축된 詩想을 터득했을 때다.
창밖 바람 소리
문고리 제치고 나가
치맛자락 펄럭이며 쏘다니다
들 자락 귀퉁이에 쓰러져
들숨소리 날숨소리
아! 아 나는 살았는가
창밖에 바람 끼
삽짝 문 박차고 나가
미친년 널뛰듯 쫓아다니다
산자락 모퉁이에 널브러져
들숨소리 날숨소리
아! 아 나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창밖에 바람 끼」 全文
시인이 토설하고 싶은 시어의 분출은 시작됐다. 절재된 표현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내면에 감추었던 흥분되고 비밀스러운 시어를 일상에서의 객관화된 현상을 심상적으로 표현했다. 화자가 나타내고자 했던 물음은 도대체 “내가 시인이란말인가”라는 탄식이다. 이는 개별적인 형태로 또는 유형화된 형태로 ‘나’라는 화자는 세계 속의 인간이 감지 할 수 있는 인식화 된 정서적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치맛자락 펄럭이며 쏘다니다/들 자락 귀퉁이에 쓰러져/들숨소리 날숨소리/아! 아 나는 살았는가/ 단어를 만나기 위한 몸부림은 바람 곁에서 곁 눈짓으로 훔친 도독의 심보다. 심성의 단아함이 보였다. 그토록 만나고 보고 싶었던 한 줄의 글씨, 숨소리조차 크게 쉬지 못했던 찰라 비로소 안도의 들숨과 날숨을 교차하며 뱉고 있다. 시인은 치맛자락 속에 감춘 비밀을 꺼내려 하지 않는다. 처절하게 날뛰며 생동감 있는 시적감각은 인간다운 정서적 감각이 토양이 된다.
화자는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면서도 하나의 사물을 등장시킨 미화는 논리적 언어라 볼 수 있다.
달빛이 곱다고
말하고 싶은데
별빛 고운 밤이라고
전하고 싶은데
그 말하면
물색없는 년 그렇게 일없나
되돌아올까
딱히 무엇엔 가도 아닌
사무쳐오는 이 그리움
함박 꽃잎 지듯 쏟아지는
달빛가득 넘치는
달 항아리
서슬 퍼런
가슴에 고인 달빛은
강물 되어 흐르고
나의 기묘한 청춘도 가고.
-「달빛 항아리」 全文
화자는 시어를 만들고자하는 목마름에 어색하다. 개인의 고백을 시적 언술로 변화시켜 논술적인 습관이다. 추상적이든 사실적이든 단어의 교합은 상상적인 감흥 속에서 샘솟는 청량감이 있어야 한다.
화자는 체험적인 매너리즘에서 빠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고 있다. 시 창작에서 골몰하며 자신의 내면까지 빠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해학이 숨어 있다. 권오정 시인의 단편적인 일상은 /함박 꽃잎 지듯 쏟아지는 /달빛가득 넘치는 /달 항아리 /서슬 퍼런/가슴에 고인 달빛은 /강물 되어 흐르고/나의 기묘한 청춘도 가고/.
시인의 가슴에 물결치는 그리움은 떠났다. 퇴색되어 움찔거릴 뿐이다. 달빛에 그을린 흔적은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시인의 뜨거운 심장은 뛰고 있다. 달빛은 스스럼없이 물 위에 떠 있다. 화자의 가슴에서 입술에서 그 안에 비밀된 통로에 밀폐되어 있을 뿐이다. 흘러가는 세월 쯤, 거르고 싶은 욕구는 시인만이 갖고 있는 진술과 순수성을 비추어 볼 때 시의 음률은 可聽的과 告白的이다. 시어는 기본적인 사상과 철학은 시적 표현의 不同을 만들 수 있다. /포플러 잎에 반짝이는 손짓으로/가닥가닥 흩어지는 솔향기 소리로/열리고 싶은 꽃망울 어루고파/나뭇가지 무성한 잎들의 수런거림으로/강기슭에 춤추는 갈대의 하얀 넋으로 /폴폴 연분홍 꽃잎 날리고파(「바람의 노래」 中에서). 시인은 시향에 쓰러졌다. 열리고 싶었던, 그래서 연분홍 꽃잎을 매달고 내 달리고 싶었던 화자는 살아있음을 고백했다.
시인의 시어의 무성한 잎들이 수군거림에도 떨림이 없다.
4. 춤추는 언어의 고백
가을엔
당신의 창가에 귀뚜리가 되겠습니다
쓸쓸하고 서글픈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밤새도록 울어대는 놈 있다고
겨울이면
창밖 흰 눈으로 내리겠습니다
서러운 이에게 전해주세요
서리서리 쌓인 한
흩날리는 축복이 되었노라고
여름날엔
한 쌍의 잠자리로 날겠습니다
사랑을 찾는 이에게 전해주세요
그토록 절묘한 비상
나래 끝에 부서지는 하늘빛을 보라고
봄 그날엔
노랑나비로 오겠습니다
대지에 피어나는
풀꽃들의 황홀함을 위하여
푸른 꿈 간직한 이들에게 전해 주세요
세상엔 아직도.
-「시인을 위하여」 全文
연기자의 고백은 섧다. 그의 쓸쓸한 뒤편에 은막이 꺼져있고 불빛도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영원함이다. 열정적인 몸짓, 입술의 떨림으로 화려한 조명 빛은 싸늘한 죽음의 시체가 되었다. 은막은 감춰져 있을 뿐이다. 싱그러운 연기자가 다가오는 순간 은막에 환한 네온 불빛이 켜지기 때문이다. 화자는 시어를 초상화로 만들어 내 가슴 안에 걸어 놓으면 밤새 뒤척이며 골몰했던 안쓰러움도 그리움으로 삭힐 수 있다. /여름날엔/한 쌍의 잠자리로 날겠습니다/사랑을 찾는 이에게 전해주세요/ 자유의 틀, 비좁은 뜰 안에서 세상을 가슴에 품고 싶은 충동이 언제쯤 탈색을 하고 싶었을까. 외로움에 지쳐 사라지는 순간까지 혼자가 아닌 둘이고 싶음이다.
곱디곱던 이마에 인생의 깊은 흔적이 파였다. 생의 저편에서 읊고 싶던 시조 한 소절이 달빛에 그을렸다. 그렇다, 시어는 꿈틀거린다. 자각적인 감성을 소유한 시인은 담백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을엔/당신의 창가에 귀뚜리가 되겠습니다/쓸쓸하고 서글픈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밤새도록 울어대는 놈 있다고/. 화자는 시적 명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애써 감추려 한다.
시인은 마술에 취해있다. 넓은 가슴은 갖고 있는 바다를 만났다. 춤을 추고 파도에 몸을 비벼도 싫증 없이 다소곳하다. 애써 주어 모아 둔 글씨 한토막이 도망치 듯 /나는 이 하루를/내 작은 정원에 나가/풀꽃을 심으리라.(「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中에서). 참된 삶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생애 결말을 맛보고자 했다.
시인은 새로운 변신을 통해서 절묘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봄날에, 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날에 그를 위하여 삶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음이다.
/슬퍼하지 말아요/아주 잠깐만 기억해요/아슴푸레한 추억처럼/그리곤 /잊어요/꽃을 잊듯이/잊어요.(「나 가고 나면」 中에서). 선한 마음의 열매는 달다. 아주 가끔은 기억해 줄지 몰라도 잊어지지는 않는다.
나를 비우고 떠나려는 비상의 날개 짓은 가엽다. 스스럼없이 살아 준 세월은 고맙고 따스한 입김을 쏘이며 불어대던 나팔도 힘이 부치니 말이다.
축복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단 결에 깔아 놓은 산수화는 퇴색하지 못한다. 영혼의 불씨가 붙어 시인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되었기 묵시의 아우성은 그 길목에 서 있을 뿐이다.
화려한 외출을 꿈꾸는 날, 비상의 날개를 펼치는 날,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여자의 수식어는 소박했음이다.
붓질에 재미 들어
한지에 베어나는
春色이 산이요
秋色이 강이라
-「격세지감」 中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늘이 되어 나비처럼 밝고 화창한 봄날에 사뿐하게 날고 싶은 권오정 시인의 시적 감각은 모래성을 쌓고 또 쌓아가려는 고된 습작,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리라 생각된다. 권오정 시인은 그동안 시집 <꽃불>, <황금실타래>, <백년의 미소>에 이어 이번에 <꽃 청산 언덕에 올라>를 상제하게 되었다.
강한 女心의 흔들림, 시인은 進行中이다.
인생은
한 장의 나뭇잎
떨어지는
잎처럼 지고 나면 그뿐
되도록 가비여운 미소로
스스럼없이 살 일이다
살며시 촉 내밀어
연둣빛 녹색으로
싱그럽게 살다가
고운 가을빛 되어
바람 좋은 날에는
나비처럼 사뿐
날아도 볼일이다
한 잎의 나래처럼.
-「나래」 全文
<당선소감에 가름할 시 한편을 올립니다>
소 리
지상엔 만 가지 꽃
하늘엔 헤아릴 수 없는 별
마음속엔 오만가지 생각
아아! 나는 어이...
글로 써 달래 볼꺼나
심상에 다가온
내 한 줄의 시가
허허로운 마음에
잠시의 여운으로 남아
그 누구의 마음에 기쁨이 될까
그 누구의 가슴에 위로가 될까
하기야 내 앞가림도 부족하니
이 노릇 어이할꼬
그래도 당신의 가슴에
꽃 피고 잎 지는 소리
잎새에 스치는 바람소리
자잘자잘 여울물 소리
들리지 않나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한점
나뭇잎 흔들고 가는 바람
꽃잎에 날개 달아
꿈을 꿈다이 꿀수있는
자리 마련하심에 깊은 마음 드립니다
<序詩>
헛소리
꽃이 좋아
꽃을 그렸습니다
바람이 좋아
바람을 노래했습니다
꽃바람
언덕에 올라
꽃이 되었습니다
꽃 살림 차려놓고
꽃노래 부르며
꽃같은 無我之境으로 살다가
사는 것 시들해지면
꽃 편지 써야지
사랑 하느라 고달프다고
받기보다 하느라 고달프다고
꽃을
창조주께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사랑이 아까운 사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하는 사람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 그리는 사람
더욱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하고 그리는 사람
다시 돌아오지 못할 멀어져간 날들
오늘 허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대 가슴에
지금 선 자리에
한순간
마음속의 갈잎 피리소리로 남아
울고 싶은 시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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