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軒 윤봉길

동북아 평화와 상해의거79주년

권운영 2013. 6. 23. 14:28

월진회 창립 82주년, 그리고 상해의거 79주년을 맞아 윤봉길 의사의 사상과 동북아평화를 위한 뜻깊은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23일 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학술대회장에는 윤의사의 숭고한 동북아평화정신을 존중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많은 내외인사들이 참석해, 종일 열린 주제발표와 토론을 경청했다.

  
▲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씨가 참석해 자료를 보고 있는 모습.
  
▲ 이우재 월진회장이 주제발표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는 (사)매헌윤봉길월진회(회장 이우재),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 충남발전연구원(원장 박진도) 3개 기관·단체가 주최했다.

대회장에는 최승우 군수와 구본충 충남부지사 및 관계공무원, 김석기 군의장을 비롯한 군의원들과 농협 조합장 등 지역 인사들, 그리고 학생들이 자리를 메웠다.

특히 외부인사로 민주화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함세웅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와 이부영 민주평화복지포럼 상임대표 등 평화·민주화운동 인사들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독립기념관 이사)씨도 시종일관 자리를 지켰다.


독립운동 영상물 기립 시청

  
▲ 참석자들이 기립해 독립운동가(獨立運動歌)와 영상을 숙연하게 경청하고 있다.

학술대회 시작에 앞서 대회장에 울려퍼진 독립운동가와 윤봉길 의사의 활약을 중심으로한 영상물이 상영되는 동안에는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선채로 시청해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 졌다.

이우재 월진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윤의사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에 맞서 싸운 민족해방투쟁은 민족의 자유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투쟁이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오늘 조국은 분단됐고,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경제전쟁은 동북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강대국들은 한반도 분단상황을 이용해 우리 민족과 역사를 농단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여 개탄했다.

이 회장은 이어 “100년전 우리 민족해방투쟁의 선각자들이 동양평화론을 제시했고 세계평화를 위해 생명을 걸고 투쟁했듯이 우리들도 부끄럽지 않은 한 시대를 살아가도록 하자. 그래서 오늘 동북아평화 공동체실현을 위한 첫 시도로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학술대회를 열게 됐다”고 학술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공동주최자인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은 22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된 한미FTA와 윤의사의 농업정신에 대해 인사말을 대신해 주목을 받았다.

  
 

박 원장은 “어제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됐는데, 이 한미FTA를 간단히 말하면 자동차·전자분야는 혜택을 입고 농수축산업은 불이익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굳이 FTA를 하지 않아도 미국시장에서 장사를 잘하고 있는 자동차와 핸드폰 등 전자분야는 더 밀어주고, 그렇잖아도 어려운 곤경에 처해있는 농업·농촌은 더 어려운 처지로 떠밀고 있는게 한미FTA의 골자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윤의사께서 살아 계신다면 뭐라고 할까. 그 해답이 농민독본에 있다”며 농민독본을 낭독했다.


한미FTA, 윤의사 통탄할 일


그는 특히 농민독본 중에서도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니며, 억만년이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다. 사람이 먹고 사는 식량과 상공업의 원료까지, 어느 하나도 농업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농민은 세상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쥐고 있다.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나라로 변해 하루아침에 농업이 가치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이다”는 대목을 강조한 뒤 “동북아시아 평화는 결코 재벌의 초극적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에 의해선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함세웅 신부는 내빈인사를 통해 “평화(平和)란 한자속에는 벼(쌀)를 골고루 나눈다란 뜻이 있다. 즉 평화는 나눔의 정신이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도 공평한 나눔을 실현하기 위해 싸웠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독재자와 재벌에 의해 나눔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며 간단히 인사말을 했다.


동북아평화의 아이콘, 윤봉길


의식행사에 이어진 분과별 토론에는 토론자 6명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했다. 토론자는 김상기(충남대 교수), 가경해(중경 대한민국 임정유적지 진열관 관장), 모리가즈토시(가나자와 시의원), 반즈라그츠체렝(몽골역사연구소장), 한시준(단국대 교수), 박송화(중국하얼빈시당학교 교수)다.

먼저 김상기 교수가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운동과 평화사상’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윤봉길 의사가 항일혁명가로 역사에 기록되기까지 덕산 시골마을에서의 행적을 발표했다.

요약하면 ‘윤의사는 덕산보통학교 시절 3·1운동을 목격하고 자퇴한 뒤 한학을 했고, 농부의 묘표사건 이후 문맹퇴치와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29년 학예회(연극) 사건으로 일본 경찰의 취조를 받으며 민족차별을 경험했고,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혁명가로서 사상적 전환을 한다. 그 후 야학에서 일제탄압을 비판하는 강연을 해 옥고를 치렀다. 윤의사는 일제의 폭압통치를 깨는 것이 농촌의 부흥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깨닫고 망명의 길을 택해 상해의거를 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토론자는 윤의사 암장지가 있는 지역인 일본 가나자와시의 시의회 의원인 모리카즈토시씨로 일본내 ‘윤봉길의사 선양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그는 윤의사 암장지를 계기로 한 가나자와시와 예산군간의 평화교류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내용은 ‘1932년 12월 19일 일본 상해파견군 제9사단이 가나자와시 교외 미코우시야마 육군연습장에서 윤의사를 총살했고, 그 유해를 비밀리에 노다야마 육군묘지 벼랑에 암장했다. 해방후인 1946년 3월 한국정부는 윤의사 유해를 발굴, 서울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모셨다. 그리고 46년 뒤 1992년 12월 19일 재일한인과 시민단체가 성금을 걷어 암장지 비석을 세웠고, 재일일본거류민단이 순국기념비도 건립했다. 이 과정에서 이시카와현의 사민당 지방의원과 일본시민, 재일교포로 구성된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모임’도 결성됐고, 월진회 일본지부와 연대해 암장지 사적보존에 힘써왔다. 또 가나자와시와 예산군과의 상호교류, 평화우호촉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가나자와시는 2008년 12월 19일 의사의 기일을 맞아 암장지 부지를 월진회 일본지부에 영구임대하기로 허가했다. 또한 윤의사 암장지를 계기로 윤봉길문화축제와 가나자와 백만석축제에 상호참가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은 동북아평화를 위한 큰 성과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나는 시의회에서 ‘윤의사 암장지는 한국에 이어 중국, 아시아를 맺는 근대사의 역사적 가교이므로 사적지로 재정비하자’고 연설했다. 가나자와에는 전쟁반대와 평화헌법을 살린 도시만들기를 목표로 한 시민운동도 이뤄지고 있다. 본인도 비전평화조례 제정을 정치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앞으로 동북아 지역에서는 시민과 자치단체 제휴로 평화연대가 양성될 것이다. 이미 그 걸음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평화의 싹 틔우는 민간교류


다음은 중국 임정유적지 진열관 가경해 관장의 발표가 이어졌다. 가 관장은 ‘윤의사의 의거와 대한민국 임정의 위상변화’에 대한 주제발표를 했다.

가 관장의 발표를 요약하면 ‘상해의거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윤봉길 의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의미가 크다. 윤의사의 의거는 가난과 내부분열로 와해위기의 곤경에 빠진 임정의 정체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중국인에게는 송호전쟁에서 사망한 천만 중국인을 위한 복수였다. 이로 인해 중국과 한국이 가장 진실한 항일운동의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 장개석은 ‘중국 백만대군이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임정이 중국국민정부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원조를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윤의사의 상해의거다. 또 윤봉길과 김구의 관계는 상보상성(相補相成)의 관계로 김구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윤 의사는 민족영웅이 됐고, 김구는 윤의사가 의거를 성공시켜 역사무대의 최전방으로 나섰다. 윤의사 의거를 접하고 장개석이 김구란 인물을 알게 됐으며, 1933년 5월 친히 김구 등 임정요인을 만나 정식으로 합작할 수 있었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다음은 반즈라그츠체렝 몽골역사연구소장이 ‘몽골의 근현대사와 평화교류’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몽골 조상인 ‘흉노’ 등 몽골의 유래와 역사개괄 그리고 근현대 몽골의 독립을 위한 경쟁 및 평화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몽골의 평화적 외교정책에 대해 “몽골은 세계 모든 나라와 문화경제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 지난 8월에 한국과도 대통령 방문으로 협력파트너가 될 것을 약속했다. 앞으로 몽골의 외교·경제정책이 동북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몽골은 대규모 광산 등 세계적인 광물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제교류가 더 활발해 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시준(단국대 역사학과) 교수의 ‘한국독립운동과 평화주의사상’, 박송화(중국 하얼빈시당학교) 교수의 ‘만주에서의 한국독립운동과 평화주의사상’에 대한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저작권자 © yes무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