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辭文學

산나물과 문학

권운영 2016. 2. 28. 10:31

산나물과 문학


(1). 나물 타령


  한푼두푼    돈나물     /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  동동말아    고비나물
  줄까말까    달래나물  /  칭칭감아    감돌레
  집어뜯어    꽃다지     /  쑥쑥뽑아    나생이
  사흘굶어    말랭이     /  안주나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  입맞추어    쪽나물
  잔치집에    취나물

 


 (2). 봉화산나물


  청량산 산나물 맛보러 
  식당을 찾았다.
  낯선 손님을 맞는
  들머리 인사부터 정겹다.

  이름도 모르는 산나물
  한 대접씩
  맛좋다고 더 달라 하면
  많이 잡수어 고맙다는 듯
  얼른 내놓는다.

  산나물 나르는 아주머니
  투박한 모습이
  산 냄새를 더 나게 한다.

  봉화 산나물 저녁을 먹고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르다.
  아직도 우리 것이
  그대로 살아있다.

                 ("봉화 산나물" 전문)

  옛날 인심이 남아 있을 산골 마을이나 시골 장터의 옛날 훈훈한 인심을 찾는다. 들머리 인사부터 정겹고 산나물을 얼른 더 내놓는 순박한 인심은 산골 식당의 후한 인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골 인심이 좋을 것이라고 미리 점쳐 놓고 들어가니까 보통 하는 인사말이라도 더 정답게 들리는 것입니다. 인심이 후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산나물도 더 푸짐하게 주는 것 같고 더 달라고 하면 많이 잡수어 고맙다는 듯 얼른 내놓는다는 것도 산골 인심인 것보다는 내 마음인 것입니다. 이 넉넉한 인심은 우리 겨레의 본래의 모습인 것입니다.


 (3). 매암이 맵다 울고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 이정진 시조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山菜)를 맵다는가 박주(薄酒)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래라. <국악원본 가곡원류>

- 매암이 : 매미
- 산채 : 산나물
- 박주 : 맛이 좋지 않은 술
--------------
* 감상 : 세상은 모두 헐뜻고 싸우고 불만을 표출하지만, 화자(우리는) 초

야에 묻혀 세상의 혼란함을 모르고 사는 삶의 참맛을 노래한 시조이다.
 

산나물, 들나물, 취나물

5월 5일 이후에는 모든 생채를 먹지 말라' 이 말은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말이다. 즉, 단오 이전에 나오는 생채는 모두 먹을 수 있다는 뜻이고 보면 4월달에 먹는 생채야말로 최고의 나물이라 할 수 있다.

나물이란 야생식물의 먹을 수 있는 부분이나 채소를 조미해 만든 반찬인 동시에 식용이 가능한 야생식물의 자료를 일컫고 있다. 숙채와 생채의 총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숙채를 의미하며 우리 식생활의 부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옛 문헌[ 조선식품성분연구보고]의 산야에 자생하는 식용식물편에서는 '고래로 조선에서는 산야에 자생하는 식용야생식물을 채소에 준해 나물이라 부르고 대단히 많이 먹고 있다. 특히 농산촌에서는 2월 초순부터 5월 중순까지 약 3개월간은 야초 등을 밥이나 떡에 넣어 먹고 있다'고 쓰

고 있다.

나물의 이름 앞에 산자가 붙은 산나물은 산에서 나는 나물이고, 들나물은 들에서 나는 나물이다. 또한 오늘날 즐겨 먹는 취나물은 곰취, 수리취 등 취자가 붙은 산나물의 총칭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참취이지만 이외에 미역취, 곰취, 수리취 등이 있다.

이러한 산채류는 최근들어 국민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소비형태의 다양화 추세에 따라 그 수요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산채류의 수요는 지난 1797년의 경우 2만 5,086t으로 1990년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났으며,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역별 생산량은 강원도와

충북지방이 가장 많아 전체생산량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산채류 산업은 산주의 소득증대와 산림의 이용률 제고를 위해서도 과감한 육성계획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련됐다고는 하지만.....,

현재 산채류 산업은 자연산 채취보다 인공재배가 많다. 인공재배는 평창산채시험장과 전국 농업기술센터의 연구지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산지재배, 특히 산지임간재배는 재배면적기준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더욱이 산지임간재배는 임업연구원이 주체가 되어 재배기술을 개발, 보급해야 하지만 조직과 예산이 뒤따르지 않아 이것마저 쉽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산채류 산업의 육성을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절명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옛선인들이 좋아했던 산채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산야채품으로 비름, 고사리, 여뀌, 쑥 등의 기록이 있고, [농가월령가]의 2월에는 들나물, 고들빼기, 씀바귀, 달래, [농가십이월속시]에는 물쑥, 소리쟁이,[조선요리법]에는 두릅, 풋나물 등이 나온다. 또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나물 볶는 법편에는 취나물, 순

채, 산나물, 풋나물, 죽순, 방풍 등이 나타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구황식량을 기록한 [구황촬요]에는 침장법으로서 더덕과 도라지뿌리를 건조해 찧어서 가루를 내고, 이것을 물에 담가서 유해성분을 제거한 후 이분말 10두에 말장1~2두를 섞어 독에 넣고 적당한 양의 소금물을 넣어두면 숙성되어 간장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

산나물의 기록은 옛날의 향가나 시조에도 많이 등장한다. 예컨데 [전원사시가]에는 '낱낱이 캐어내어 국 끓이고 나물 무쳐'라는 내용이 있고, '산채를 맛들이니 세미를 잊을노라', '쓴나물 데운 물이 고기보다 맛이 있네(정철)',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춰 먹은 후에(윤선도)' 등의 기록이 있다.

옛 사람들이 산채류를 먹었던 기록은 이밖에도 많다. 성성거사는 1611년 허균이 편찬한 [도문대작]의 서문에서 '내가 죄를 짓고 해변으로 귀양살이를 하게 되니 싸라기도 계속하지 못하고 상에 오르는 것은 썩은 생선과 쇠비름,돌미나리뿐이다. 날마다 이것만 먹으니 밤이 새도록 배에 매달려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배가 고파 쇠비름과 돌미나리만 먹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산채류의 기록 중 고사리의 내용을 나열하면서 서서히 글을 마칠까 한다. 1791년 김정중이 쓴 [ 연행록]에는 '고사리국을 올리는 것이 주방의 오랜 규례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1874년 Claude Charles Dallet는 순무, 중국배추, 질경이잎 및 고사리 이외에는 별로 없는데, 고사리는 매우 많이 소비된다는 내용이 있다.

더욱이 고사리를 많이 먹는 습성은 고사리 꺽기놀이를 파생시켰다. 전라도지방에서는 팔월 한가위날 밤에 부녀자들이 모여 강강술래와 더불어 고사리꺽기놀이를 했다고 했다. 또한 경기도에서는 고사리꺽기놀이를 할 때 '할멈 왜 그래, 고사리 꺽으러 갑시다'라는 노래를 한다.

한편 우리 나라에는 여러 가지 취나물이 많이 난다. 나물로는 잎을 이용하고 약용은 뿌리를 주로 용하고 있다. 먹을거리로써의 취나물은 앞으로 소비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여 일반 산주의 소득증대에 일조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산채류의 육성방안이 확실하게 실현된다면 산주의 소득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산지임간재배가 쉽게 이뤄지도록 정책방향이 하루 빨리 실현됐으면 한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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