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꽃이 앓는다. 이것이 꽃몸살이다. 몸살 끝에 꽃이 핀다. 봄이 오면 노인도 앓는다. 이것이 춘수(春瘦)다. 춘수는 약이 없다. 겉은 파리하고 속은 시름겨운데, 꽃 보면 눈물짓고 입 열면 탄식이다. 두보가 하소연한다. ‘꽃잎은 무엇이 급해 그리 흩날리는고/ 늙어감에 바라기는 봄이 더디 가는 것’ 노경이 이토록 애절하다.
산 아래 푸르른 이내가 깔려 몽롱한 초봄의 한갓진 언덕. 오가는 이 뵈지 않고 복건을 쓴 도포자락의 노인이 혼자 노란 꽃, 붉은 꽃 앞에 두고 휘청거린다. 술병과 술잔과 잔대가 발밑에 어지럽다. 춘풍이 코끝을 간질이는데, 낮술에 취한 노인은 눈이 반이나 감겼다. 꽃향기는 술잔에 스며들고 꽃잎은 옷 위에 떨어진다.
권커니 잡거니 짝이 없어 노인은 꽃과 더불어 대작했다. 술병 쓰러진 그 자리, 꺾어놓은 꽃가지 서너 개가 보인다. 상춘곡 한 대목이 절로 나온다. ‘곳나모 가지 것거 수(數) 노코 먹으리라’ 흥을 돋워보려 하나 꽃피는 이 봄을 몇 번이나 더 볼는지, 마음 한 구석으로 수심이 파고든다. 꽃 꺾어 곁에 둔들 가는 봄을 잡아두랴.
청년은 봄맞이가 즐겁고 노년은 봄앓이가 힘겹다. 하여도 젊은이들아, 우쭐대지 말거라. 봄나들이 길에 꽃 아래 취해 쓰러진 노인을 보거들랑 뒷날의 날인가도 여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