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그대가 올해도 봄을 이끌고 왔다.
그대가 피어야 그때부터 봄인가 보다.
긴 겨울의 어둠과 추운 바람을 헤치고 제일 먼저 숨가쁘게 달려와
나의 가슴에 안긴 매화!
그대는 어느 봄 꽃보다 아름답고 야물며 반갑다.
따사롭고 한가한 5월의 들판에서
살랑살랑 피어 오르며 옷고름 흔드는 여유로운 꽃들과는 사뭇 다르다
매화는 힘들어도 개나리, 진달래, 벗 꽃에 앞서 인간에게 봄을 알린다. 늘 그랬다
그런 매화의 마음을 알기에 그대에게 제일 먼저 달려간다.
그대가 모진 겨울을 헤치고 나에게 제일 먼저 달려온 것처럼 말이다
참으로 자연은 인간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는 방법 또한, 그윽하면서 신비롭기도 하다.
이런 매화를 보고 있으면, 섬진강 인근 평사리가 배경 무대인 소설<토지>의 주인공
‘최서희’가 머릿속의 매화처럼 망울 져 터진다.
겨울 같은 시대를 꼿꼿하게 살아온 그녀의 모습이 매화를 닮아서 일까?
나는 올해 매화를 보면서 “이 꽃이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과 비슷할까”생각해 본다
요즘 흐드러지게 피고 있는 매화를 보면서
“당차고 야무져서 어디 빈 구석 하나 없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 사람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한다”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강한 리더십과 적극적인 행동의 소유자인 당차고 강한 느낌을 매화에게서 받는다
요즈음, 똘망똘망한 매화가 일제히 소리치는 야무진 봄의 함성을 보고 있노라면,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충신이나 독립투사의 정신 같은 것마저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나만의 감성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매화의 “매(梅)”자(字)의 호(號)를 가진 인물들을 알고 난 뒤,
이제 매화는 단순한 봄 꽃의 의미를 넘어 인생의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등 주요 인사를 즉사시키고 총살당한
윤봉길의사의 호가 “매헌(梅軒)이었다.
조선조 대표적 충신,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호가 매죽헌(梅竹軒)이며
또한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 태워버리고 중이 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의 호도 매죽당(梅竹堂)이다.
이렇듯, 매화는 조선조에서부터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군자의 정신적인 지주로 피어 있었다
그 정신적 뿌리는 거센 겨울의 한파를 이기고 헤쳐 나와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알리는 매화의 강인한 생존본능에 기인한다.
오늘날 같이 줏대없고 우울하며 컴컴한 우리 사회와 마음에도
이 봄, 매화 같은 정신이 활짝 만발하기를, 저 매화를 바라보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