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문학예술��, 1957.7)
<감상의 길잡이>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 이 시는 앞에서 설명한 시 <꽃>에 대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화자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소망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꽃’이 사물의 본질을 상징한다면, ‘미지’․‘어둠’․‘무명’ 등은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화자는 그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 즉 꽃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1연에서 화자는 사물의 본질을 모르는 자신을 ‘위험한 짐승’이라 하여 무지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신의 자각 없이는 ‘꽃’ 역시 불완전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3연에서는 ‘추억의 한 접시 불’이라는 모든 지적 능력과 체험을 다하여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화자의 몸부림과 절망을 ‘나는 한밤내 운다’로 표현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비록 존재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했어도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 ‘나의 울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역설적 깨달음을 보여 주는 한편, 마지막 연에서는 결국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 자신의 안타까움을 ‘얼굴을 가리운 신부’ - 꽃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1) 김춘수(金春洙)
1922년 경상남도 충무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중퇴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1982년 ��김춘수 전집�� 발간
대한민국문학상 및 예술원상 수상
경북대학교 교수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문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매(古梅) / 惠園 박영배 (0) | 2018.04.05 |
---|---|
정순영 (0) | 2018.03.13 |
[스크랩] 오케스트라와 나라, 정덕기 (0) | 2018.02.13 |
[스크랩] 허난설헌(許蘭雪軒) / 생애, 작품 (0) | 2018.02.01 |
허균, 허난설헌생가 (0) | 2018.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