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의 재발견 - 회화
오원 장승업의 위상
장승업은 조선 삼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이를 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들 있으나 이러한 오원(五園) 신화(神話)에 대해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다. 불과 일백여 년 전에 활동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것은 많지 않으며, 꽤나 신비화된 감도 없지 않다. 다만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삶의 태도 등 기인(奇人)으로서의 면모를 짐작케 하는 여러 일화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올 따름이다. 조선말기의 화가 오원은 어스름에 피어난 분꽃에 비유되기도 한다. 향이 짙고 빛깔이 화사해 삼청(三淸)이나 사군자와는 구별되는 분꽃은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에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홍백매도(紅白梅圖) 십곡병(十曲屏)〉 부분
장승업,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90.0×433.5㎝, 호암미술관 소장
오원의 필치나 용필법(用筆法)에서도 새로운 화풍이라 불리는 근대적인 면모를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다작을 한 오원은 여러 그림에서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였는데 채색기법에 있어서는 김수철에 뒤지지 않는 수채화적인 요소가 감지된다. 수묵이 중심이되 주로 담청과 담황의 두 가지 색조만을 집중적으로 사용한 점도 시선을 모은다. 이처럼 선입견을 버리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장승업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진일보한 새로운 필법을 화폭에 구사하는 등 철저한 보수주의적 성향의 인물은 아니었음을 짐작케 된다. 오히려 그의 제자인 조석진(趙錫晉, 1853∼1920)과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보다 복고적이고 고답적이어서 오원의 선구적인 화풍은 짙은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조선말기의 보편적인 경향과 좋은 대비가 된다.
결국 장승업의 부침(浮沈)은 당시 중인 계층의 부침이라 할 수 있다. 숙종 이후, 위항문인(委巷文人)들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장승업은 이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 화가로 위항문인들의 미감을 화폭에 옮겨 구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매우 보수적이고 예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전반적으로 고답적인 그림 소재와 그의 화풍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원 장승업의 위상 (한국 미의 재발견 - 회화, 2005. 3. 24.,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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