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작품/雲影의 文人畵

[스크랩] `오원 장승업의 위상

권운영 2017. 7. 2. 03:04

한국 미의 재발견 - 회화

   

오원 장승업의 위상



장승업은 조선 삼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이를 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들 있으나 이러한 오원() 신화()에 대해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다. 불과 일백여 년 전에 활동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것은 많지 않으며, 꽤나 신비화된 감도 없지 않다. 다만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삶의 태도 등 기인()으로서의 면모를 짐작케 하는 여러 일화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올 따름이다. 조선말기의 화가 오원은 어스름에 피어난 분꽃에 비유되기도 한다. 향이 짙고 빛깔이 화사해 삼청()이나 사군자와는 구별되는 분꽃은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에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홍백매도() 십곡병()〉 부분

장승업,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90.0×433.5㎝, 호암미술관 소장


오원의 필치나 용필법()에서도 새로운 화풍이라 불리는 근대적인 면모를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다작을 한 오원은 여러 그림에서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였는데 채색기법에 있어서는 김수철에 뒤지지 않는 수채화적인 요소가 감지된다. 수묵이 중심이되 주로 담청과 담황의 두 가지 색조만을 집중적으로 사용한 점도 시선을 모은다. 이처럼 선입견을 버리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장승업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진일보한 새로운 필법을 화폭에 구사하는 등 철저한 보수주의적 성향의 인물은 아니었음을 짐작케 된다. 오히려 그의 제자인 조석진(, 1853∼1920)과 안중식(, 1861∼1919)이 보다 복고적이고 고답적이어서 오원의 선구적인 화풍은 짙은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조선말기의 보편적인 경향과 좋은 대비가 된다.

결국 장승업의 부침()은 당시 중인 계층의 부침이라 할 수 있다. 숙종 이후, 위항문인()들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장승업은 이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 화가로 위항문인들의 미감을 화폭에 옮겨 구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매우 보수적이고 예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전반적으로 고답적인 그림 소재와 그의 화풍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원 장승업의 위상 (한국 미의 재발견 - 회화, 2005. 3. 24., 솔출판사)


 






문화 유산 시리즈 <한국 미의 재발견> 제6권.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새롭게 해석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어 누구...자세히보기
저자
이원복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1976년 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일한 이래 국립공주박물관장,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장에 재임 중이다. 기획한 ...자세히보기
출처 : 규방칠우
글쓴이 : 혜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