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박의 사람과 삶] 무원 도창회 교수의 문학과 인생“문학에 예외는 없다…죽도록 읽고 쓰라” | ||||||||||||
[위클리오늘=로즈박 칼럼니스트] 한국 수필문학사에서 도창회(77) 교수는 전설로 불린다. 문학의 외골수, 휴머니티의 대부로 상징되며 서정수필에서 에로시티즘과 이미지수필로 변신을 하고 다시 유미주의로 넘어간 그의 작품은 체험위주의 생활수필을 문학수필로 한 단계 높여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천득과 양주동 두 교수가 그의 은사였다. 양주동 교수가 생전에 그의 수필을 보고 그의 문통을 잇길 바라는 차원에서 아호를 무원(无源)이라고 지어주며 학점을 100-1=99점을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점을 더 주면 한국의 국보가 바뀐다며…. 많은 문학인들에게 천리를 앞서가는 수필가로 명망 받는 도창회 교수를 해를 넘기느라 사람들의 걸음이 총총한 인사동에서 만났다. 야윈듯하나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그의 60년이 넘는 그의 문학과 삶의 진솔한 안쪽이야기를 들었다. “대구 계성고 2학년 때 전국 백일장에 나가 ‘문둥이길 나그네’란 시로 성인부를 통합해 시 부분에서 장원을 했다.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이 계성고 출신 선배이기도 하다. 당시 교장이던 신태식 선생으로부터 미래의 위대한 시인의 탄생이라며 전교생들 앞에 칭찬 받았다. 그러나 시는 뛰어난 시인이 많아 1등이 어려울 것 같아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대표선집으로는 바람 밥과 설산유정이 있으며 스테디셀러로 피천득의 인연과 함께 교보문고에서 10년 이상 판매됐다.” 국제 펜클럽에 전작이 실려 있는 2000줄의 장시, 장송비가는 시어 중복 없는 명시로 한국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 그의 시집 장송비가는 정신문화원 옆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6개월 동안 날마다 죽음을 보며 직관으로 쓴 시다. 그런 연유로 한국문단에서는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유력하게 거론한다. “이후 전라도 장수에서 3년6개월을 머물면서 다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혼의 연가’를 썼다. 사랑은 인생의 근본이다. 이성간 남녀 간의 사랑이다. 그게 없으면 인류가 종속을 안 한다. 사랑이 없으면 암흑과 고독의 연속이다.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본다. 그것을 감각적이다 뭐라 말하는 놈들에게 ‘야 이놈아 너는 여자와 사랑 안 해봤어’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진리, 고독, 선 이런 거 없어도 살 수 있어. 그런데 사랑 없으면 못살지. 식물도 사랑이 없으면 말라 죽어 생명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서 내가 사랑의 연가를 쓴 것이야. 내 체험을 녹여서 상상력으로 그렇게 쓴 것이지. 지금도 파주에 있는 산 아래는 근자에 쓴 시 24여 편이 야외에 전시돼 있어. 그 시들을 쓸 때도 나는 따뜻한 잠자리를 마다하고 산 아래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면서 썼어.” 모든 시인들이 시를 그렇게 써야만 하느냐고 물었더니 음성이 높아졌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열렬히 시를 써야지 방구석에 앉아서 어떻게 시를 써. 나는 지금도 매일 50여 편 이상의 시를 읽는다. 어젯밤에도 거의 밤을 새웠다. 예외는 없다. 죽도록 읽고 쓰라. 지금의 문인들을 보면 문명의 이기에 물들어선지 편리하게만 살려고 한다. 치열함이 없다. 글속에 영혼이 없이 자기 독선에 빠져있다. 가장 못난 짓이다.” “문학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신지?” “철학과 과학은 진을 추구한다. 종교와 도덕은 선을, 예술은 미를 추구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탓 할 수 없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나는 문학의 미를 택했다. 진·선·미 이 셋 중에 가장 으뜸은 미다. 아름다움 속에 진·선·미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미를 추구하는 문학이야 말로 바로 가공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 수필, 소설은 모두 사실적 진실을 쓰고 있어 옳은 문학이 아니다. 사진 찍듯이 쓰는 게 어떻게 문학인가. 괴테의 파우스트는 상상의 세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문학은 체험의 소산물이 아닌가?” “체험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피 속에 녹여내 작품을 쓸 때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승화된 작품세계가 나오는 것이다. 문인들은 모두 상상의 천재들이다. 영국의 시인 키이츠, 예이츠, 세익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등이다. 내가 추구한 장송비가, 사랑의 연가 모두 상상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문학의 본질을 두 가지로 본다. 인간의 본연과 본선으로 진정한 문학은 끝까지 몰고 가야지 적당 선에서 멈추면 안 되는 것이다.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극한까지 가야지만 시가 되고 수필이 되는 것이다. 문학이 위대한 것은 마지막 진실과 진리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본능으로 가기 위한 작품을 하며 새로운 변화로 가는 중이다. 자연과 동물의 본능 중에 벌들은 보면 역할과 기능이 모두 다르다. 벌들은 본능적으로 방어하고 싸운다. 그것은 인간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설령 도덕적으로 틀렸다 해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를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회의가 간다. 어느 날은 천하의 나쁜 놈이 되고 또 다른 날은 천하의 좋은 놈이 되기도 하고…. 인생에 후회 되는 것도 많다. 해는 서산에 걸리고 갈 길은 먼데 할 일은 아직 많고….” “아니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 또한 갸륵하지 않은가. 하나도 남지 않아도 괜찮다. 먼 훗날이라는 내 시에 써놨다. ‘시집을 하나 가지고 시집에 눈을 박고 살다가 고독에 떨다 갔다 해요. 먼 훗날 누가 묻게 되면 고독에 떨다 갔다 해요….’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지 시비가 천년을 가면 무엇을 하겠는가. 만일 문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잡놈이 되었을 것이다. 문학이 나를 구제 해줬다. 문학 덕분에 순수하게 살았다. 삶 전체를 잘살았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문학을 했기에 세속의 욕망을 땅에다 탁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후배 문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지?” “옆을 살피면서 살아라. 역지사지로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입장을 보고 그 처지를 살펴라. 그러면 미움이 없어지고 여자는 연애를 하고 남자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시를 써야 하는 것이다. 엉터리는 안 된다. 문학은 인류의 정서를 맡은 것이기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문학인의 숙명이다. 나는 그래서 멈추질 않는다. 다시 시작 하고, 쓰고…. 그게 도창회가 살아있는 이유지….” 작은 일식집에서 시작한 대화는 다시 찻집으로 옮겨가며 밤이 이슥하도록 이어졌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긴 시간 침묵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의 인생과 글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완전한 동일시로 살아온 것임을 알게 됐다. 생의 대부분을 문학인으로 오롯이 살아온 무원 도창회 교수와 그의 시 ‘지하철 연가’가 걸려있는 안국역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카랑한 음성이 발목을 휘어 감는 듯하다 “엉터리로 걷지 말고 잘 걸어가.” 2014년 제야의 종소리를 세 시간 남짓 남겨둔 거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표정이 휘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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