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스크랩] ◆<必讀>천사인가 악마인가

권운영 2014. 12. 23. 08:28

 

 

천사인가 악마인가

 

 


1918년 노벨위원회는

그해 노벨화학상의 수상자로

암모니아 합성법을 발견한 독일의 화학자 

하버(Fritz Haber)가 선정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는 1908년

기체 상태의 질소와 수소를

저온에서 높은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저렴하게 대량으로 암모니아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데 성공하였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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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 ]

 

사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그의 업적은 화학상이 아니라

평화상을 수상 받아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업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질소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

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 이후

산업화와 더불어 인구가 급격히 늘자

필연적으로 식량 문제도 커져갔습니다. 

농산물 수확을 늘리려면

비료가 필요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질소비료의 생산성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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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 노란이 있지만

인조비료는 인류를 구원하였습니다 ]

 

 

하지만

당시 유일한 질소비료의 공급원은

칠레초석(Chile Saltpeter)이었는데,

공급이 한정되다보니 가격이 비쌌고

제때

공급이 이루어지기도 힘들었습니다. 

극단적 가정이지만

만일

이때 새로운 질소비료 생산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심각한 기아에

허덕였을 가능성도 충분하였습니다. 

 

인류에게 직면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여 준 것이

바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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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소비료의 능력을 명확히 보여주는 실험 사진입니다 ]

 

만일

그의 업적이 없었다면

아직도 인류는 기아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인류는

약 70억 명으로 추산되는데

만일

농업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게 해준

암모니아 합성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인구의 최대 추정치는

36억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가 섭취하는 영양원의 약 3분의 1이

질소비료의 혜택이니 

그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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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인조비료는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

 

그런데

암모니아 합성법은

폭발물 제조에 필수적인 질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제1차 대전 당시

해상이 봉쇄되어 원자재를 구하는데

문제가 많았던 독일이 

문제없이 폭발물을 생산하였던 것을

연합군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바로 하버의 공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질소비료 관련 원자재는

폭발물과 관련이 있어 국제 거래에 일부 제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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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노르웨이에서

비료를 가공한 사제 폭탄 테러가 발생한 모습 ]

 

그런데

하버가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자

국제 사회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암모니아 합성법이

폭발물과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화학 무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애국심에 투철하였고

일견 군국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던

그는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가스를 만들어내는데 앞장섰고

1915년 4월

이프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직접 실험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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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는 악명 높은

포스겐과 겨자가스의 개발자이기도 합니다 ]

 

결과는

상상이상으로 참혹하여

전후

국제사회가 화학무기 사용 제한에 동의하였고

제2차 대전 당시에

나찌도

보복이 두려워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였을 만큼

당시

화학무기가 보여준 살상력은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과에 몹시 고무되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더 강력한 독가스 개발 연구에 매진하다가

이를 반대한

동료 화학자이자 아내 클라라(Clara Immerwahr)가

자살하였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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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살상 능력을 확인하는 하버(上)
살상 무기 개발에 반대하다가 자살한 아내 클라라 ]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그의 노벨상 수상이 부적절하다고

극력 반대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전쟁 범죄자로 몰려 스위스로 피신한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그 또한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행위가

순전히 애국을 위한 것이라 믿고 합리화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소장으로

영전하여 독일의 화학 발달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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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과 함께 한 하버 ]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아오고 승승장구하던

그도

1933년 나치의 등장과 함께 몰락하였습니다. 

태생이

유태인이었던 그는 쫓겨나듯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겨 갔으나

제1차 대전 참전 경험이 있던

동료 교수들은 그를 경원시하며 배척하였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그는 1934년 회의 참석차 찾아간

스위스의 바젤에서 객사하였고 그곳에 묻혔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원죄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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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족을 대량 학살하는데 사용 된 자이클론 B도

그가 만든 화약 물질이었습니다 ]

 

1920년대

그가 살충제로 만든 자이클론 B(Zyklon B)가

동족인

수백만의 유태인을 대량 학살하는데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지구상에 수십억의 인류가 더 살아 갈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준 인물이기도 했지만

수백만의 생명을

죽도록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비록

혜택을 받은 이들이 더 많지만

그가 만든 무기나 물질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이 워낙 컸기 때문에 

비난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출처 : 우대받는 세대
글쓴이 : 地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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