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처음 예상은 하루에 120페이지 정도를 3일에 걸쳐 읽으려고 했다. 조금 무리해서 140페이지까지 읽어야만 했지만 사람에게 예정은 예정일 뿐이였다. 첫날 겨우 10페이지 읽고 둘째날 100페이지 읽고 셋째날 30페이지 정도를 읽게 되었다. 제한된 시간은 목요일이였고 일요일에 읽기 시작해서 화요일까지의 사정이 이러하여 수요일에 어쩔수없이 250페이지 이상을 읽어야만 하는 엄청난 상황이 나에게 닥쳤다. 꼭 다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없지만 내 원칙이 집어든 책은 끝까지 읽자는 주의라 부랴 부랴 수요일에 200페이지 정도를 읽고 당일인 목요일에 50페이지 정도를 읽었다. 덕분에 읽느라 힘들었다. 읽었다는 성취감만 남은 듯하다.
샤르트르를 철학자로 알고 있었다. 하여, 이 책의 저자인 장 폴 샤르트르가 내가 알고 있는 샤르트르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책이 다소 생소했다. 철학 내용이 아니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니 말이다. 내 미션중에 하나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전부 읽는 것이라 차례가 되어 읽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샤르트르가 맞았다. 실존주의 철학자라는 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동일했는데 그 외에도 이 책과 같은 비평집도 펴 냈고 소설도 썼고 희곡까지 썼고 내가 알고 있는 그 철학자로써 철학책도 썼다. 다방면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 듯 하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이니 당연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 하고 말이다. 내가 안다는 것이 유명인사와 동일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장 폴 샤르트르는 장 폴 샤를 에이미르 샤르트르라는 풀 네임을 갖고 있다. 아마도 내가 샤르트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프라스 영화에서 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와 같은 영화감독들의 누벨 바그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프랑스 영화는 문화를 리드하는 입장이였고 화면의 구성이나 철학들이 감미되어 사람들에게 영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했는데 이런 것들이 철학과 맛물려 이야기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뒤 늦게 90년대 전후로 유명세를 치르면서 함께 프랑스 철학들도 더 유명해진 것으로 기억한다.
샤르트르는 느벨바그의 사람들과는 30년의 차이 정도가 나는 인물이지만 그들의 사상적인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단순히 그들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에게 실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 여러 사람중에 한 명이 아닐까 싶은데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연결되어 생각하면 실존에 대해 고민을 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던 듯 하다. 2차 세계대전과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들에게 당면한 문제 였을테니 말이다. 또한,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당의 유럽 공습과 함께 더더욱 지식인으로써 고민을 하던 시기라 생각이 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제목과는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읽게 되면 결코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책 한권이 세상에 나올 때는 그 책과 관련되어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생각, 행동들이 다 결부 된 것이고, 그 책을 저술한 저자와도 밀접한 연관이 된다. 저자가 어떤 생활태도와 자세와 철학과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도 중요하고 어떠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거쳐 성장했는지 여부를 비롯해 현재 작가의 상태와 상황도 중요하고 작가가 책을 쓸 당시의 시대상을 비롯한 다수의 알 수 있고 없는 힘들이 뭉쳐 작가의 머리에서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책으로 펴 냈는지를 아는 것은 책의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1947년 작가의 상황'이라는 네 꼭지에 대해 저술된 작품이다. 제목만 볼 때 꽤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고리타분할 수도 있고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냄새가 팍팍 난다. 한편으로는 단지 저 4개의 제목을 갖고 이리 긴 글을 써서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역시 철학자이자 작가답다는 다소 경탄어린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람은 무엇에 대해 보고 듣고 알고 느끼고 생각한다고 해서 꼭 글로 쓰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그 자체로 끝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음악을 하고, 누군가는 온 몸으로 표현을 하고, 누군가는 글로 표현을 한다. 이 중에서 글로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일단, 이 많은 사람들중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사람의 뇌리에 들어가는 말로된 표현을 글로 써서 시각을 통해 머리에 들어와 기억에 남고 어떤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독자는 작가라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만 알고자 쓰는 법은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중에 하나로 글을 쓰는 것이다. 불 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을까? 글을 써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망망 대해에 오로지 나 혼자 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굳이 글이라는 걸 쓰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단, 내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고대로 부터 내려와서 글을 쓰면 누군가는 본다는 걸 의미하는데 중세시대까지는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명확했다. 글을 쓰는 작가가 일반인이라도 해도 글을 읽는 사람은 고위층이였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야만 했다. 중세시대라면 성직자들이 좋아할 글을 써야만 글이 읽혀진다.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누군가 글을 읽어야 만 존재의 가치가 생긴다. 중세 이후라 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이제는 성직자에서 돈 많은 사람들 - 귀족, 왕족, 신흥 세력들 - 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는 차이가 다를 뿐이다.
작가로써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다. 지금도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여전히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글을 읽고 만족할 사람이 나와야 하니 부자들에게 글을 쓰고 그들에게 돈을 받으며 먹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불행한 존재일 수 있다. 시대가 흘러 부자를 위해 특정 계층을 위해 글을 써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만 여전히 글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쓰게 되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리뷰도 누군가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단순하게 내가 이 글을 쓰고 내적으로 풍부해지고 내공이라 표현하는 것이 생긴다는 이유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솔직히 말이 안된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반응을 보이거나 최소한 이 글을 읽는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글을 쓴 보람이 생긴다.
아울러 내가 아무리 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여도 이미 내가 자라온 성장 배경이나 만났던 사람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상황 - 직업, 사는 곳, 쓰는 언어, 가족 구성원을 비롯한 잡다한 것까지 - 을 비롯해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봤던 인터넷 기사까지 다 포함된 총합으로써 정념이 글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같은 주제를 갖고도 오늘 쓰는 글과 내일 쓰는 글이 다르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글로써 표현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고 읽은 것을 내 자신에게 맞게 다시 조합하는 일련의 과정이고 이를 사람들이 보는 곳에 올려 검증이 되기도 하고 공격을 받기도 하고 함께 공감을 받기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인식하며 올리게 된다. 이런 문구에 기분이 나뻐할 지 좋아할 지에 대해서도 잠시 고려하기도 말이다.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줌으로 인해 최소한 몇 명이라도 내 글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에 기뻐하는걸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글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나라는 자아가 흔들리고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누구를 위해 쓰는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을 읽는다고 답을 알 수는 없다. 책에서 1947년 작가의 상황처럼 어느 작가가 쓴 글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그 글을 쓴 목적과 글을 쓸 당시의 상황과 작가의 처지까지 알아야만 작가의 머리속에 들어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읽고 내가 깨닫는 것이 바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내 주관을 갖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나로써는 글을 쓴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였지만 지속적으로 글을 쓰면서 점점 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명확한 인식을 하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럼으로 인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을 할텐데 대체적으로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 스스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쓰지는 않아도 최소한 더 잘 쓰려고 노력을 하는 측면이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문학이란 세상을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고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