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조)아우르기 (시조, 시, 수필) (3)
송 귀 영 (한맥 문학가 협회장)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판을 비롯해 국보, 보물 등 70여점을 소장한 유서 깊은 우리나라 3대 종찰 법보 사찰 해인사에서 지난 8월24일 개최한 제22회 맥 문학가협회 여름 세미나는 맥 문학으로써도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이 세미나 행사시 시낭송을 통하여 소개된 “연鳶을 타고” 라는 작품이 유년기의 한때를 기억하게 하면서 한시 한 소절이 생각났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잘 거느리면
하고자 하는 대로 날릴 수 있고
내 마음도 저 연과 같이
하늘에 올라 있도다.-
관비련에 나오는 한시의 한 구절이다.
검정 귀 마개와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또래의 조무래기들과 황량한 들판에서 사기 그릇 조각을 빻아 가루를 풀에 먹인 실로 방 줄을 매어 연 싸움을 즐겼던 어린 시절이 아스라하다.
바람이 안개를 걷어갈 무렵 연은 창공에서 신나게 날아올랐고 유년시절 푸른 꿈을 먹고 자랐다면 연은 바람을 먹고 살면서 날고 싶었던 충동과 함께 가슴 퍽 찬 감동으로 희망을 주곤 했었다.
어린 시절 높은 하늘은 희망의 초롱초롱한 해맑음이요 크나큰 꿈의 상징이었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동적인 연 날리기는 몸통을 공중에 띄우고 양력을 만들어 좌우와 위아래로 흔드는 묘기도 보였다.
바람이 불고 풍경이 변하는 텅 빈 논두렁 위로 샛바람의 등에 업히어 들판을 샅샅이 훑으며 즐김을 날리기도 했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연줄에 걸어 띄워 줄을 늘어트리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던 그 즐거움은 너무나 컸었다.
자신의 분신을 푸른 하늘에 띄우던 행위로 방패연이 창공에 휘날릴 때의 스릴이야 어디에 비길 수 있었겠는가.
시인은 이미 연이라는 기억을 끌어안고 과거로 뒤 돌아가 동심의 주관성을 객관성으로 서서히 변용시켜 연줄의 짜릿한 감흥으로 끌어안는다.
그 순간만큼은 신선도 부럽지 않았음을 진부하게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연 날리기의 민속놀이가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사이 달집태우기와 병행하여 주로 농어촌에서 즐기는 우리민족 고유의 놀이였다.
그해의 재난을 멀리 날려 보낸다는 뜻에서 연줄을 고의로 끊어 띄우기도 하다가 그것이 발전되어 연 싸움 날리기 놀이로 진행 되었다.
신라나 고려시대 봉화와 함께 군사통신으로 사용하였던 유래가 민속놀이로 발전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더러 있다.
이렇듯 색깔과 모양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연이 있는데 동양권에서는 동물을 표현하는 연들이 주종을 이룬다.
동이연, 꼭지연, 치마연, 반달연, 가오리연, 방패연 등 다양한 종류의 연이 있고 특히 중국에서는 용이나 해태 같은 상상의 동물을 상징하는 연도 더러 볼 수 있다.
얼레에 실을 감아서 공중의 높이를 조절하여 잦으며 연 싸움을 하는 동안 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연 날리기에 정신을 팔았던 어린 시절 이였다.
창공에 훨훨 비상하는 쾌감의 짜릿함은 잔잔한 재미를 더해 흥분의 소박한 어린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여하튼 연 날리기는 대체로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철이 제격인 놀이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매달아 창공으로 멀리 띄워 보내어 액운을 때우던 옛날의 그리움은 장년층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 추억이 아니겠는가.
창대한 하늘을 쳐다보면 콱 막혔던 숨도 시원스럽게 뚫리며 연날리기의 진한 매력은 날고 있는 연과 연줄이 한데 어울려진 동심의 교감이라 하겠다.
-無所不在 小搖自在- (부제)
오르자
연을 타고 오르자
가슴으로 부딪치며
바람 타고 오르자
드넓은 창공을 나르면
그곳에 딴 세상 있으리
높이 높이 오르자
아스라이 솟아올라
발아래 두둥실 뭉게구름
아! 자유다
자유의 하늘이다
삼라만상
까마득 소요小搖를 디디고
퇴속頹俗을 걷지 못한
탁세濁世의 한천寒
신선이 부러 울까
허공 속에
진해塵骸 되어 날다가
어느 봄날
한 송이 들꽃으로 환생 하면
아름다운 손길이 반기겠지
-연鳶을 타고- 전문 권 오 정
화자는 연으로 전이되어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구름을 뚫어 가며 아무 거리낌 없이 창공을 훨훨 날라 올라 꿈을 꾸고 희망을 품는 상상을 한다.
바람에 부딪치며 뭉게구름을 가슴에 안고 연을 타고 오른 천공은 오직 거부 할 것조차 없는 도도한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푸른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자유는 지상의 모든 갈등과 번민을 디디고선 한천에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못 한다.
황량한 초겨울 바람이 가을 거지를 끝낸 논밭을 쓸어 올리기라도 하면 연은 좌우 위아래로 흔들어 동심에 심장을 동동 굴리며 환희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짧은 순간 뜨뜻한 콧김을 훅 뿜어내고 삼라만상 무한의 끝에서 소요를 디디고 탁세를 향해 훨훨 날라 오르는 퍽 찬 희망이 있을 뿐이었다.
설사 연싸움에서 패한 연이라 할지라도 줄이 끊긴 채 중심을 잃고 흐느적대며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걸려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한 톨의 찢긴 잔해이거나 한 송이 씨든 들꽃이 된다한들 집착할 이유가 없음이다.
그저 창공에 연을 타고 떠다니다 원하는 대로 환생하면 그만인 것이다.
어릴 적 기억은 언제나 늙지 않고 앙상한 뿌리로 웃고 쉬어가며 달래는 여정이 간절해서 연 날리던 그때를 이렇게 혼절하듯 저 하늘의 역동성을 반추하게 한다.
하늘을 날고 있는 많은 연 중에서 용상운위龍翔雲嶎 “용이 화려한 빛을 감싸고 위용을 자랑하니 길한 구름이 하늘을 뒤 덮는다.”의 과거를 웅대하고 과감한 현재로 낚아 채지 못함이 이 시의 잡티로써 꼬집힘이다.
차라리 웅대하면서도 소박한 한 송이 바람에 흔들리는 무명의 들꽃이고 싶었던 것은 화자의 적은 꿈으로 응축한 사유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겠다.
근심 걱정 없는 그러했던 유년의 그 시절-
아! 멋진 자유였던 것은 틀림이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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