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고향

[스크랩] 봉화,춘양일대의정자..춘양.한수정..

권운영 2016. 7. 21. 10:46

뒷면 전경한수정 주위 공간

진입로

건축 이야기.

춘양의 자연경관을 한 품에 안은 한수정 .

봉화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36번 도로를 타고 19km쯤 가면 왼쪽으로 영월로 가는 88번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로 1.5km 남짓 가면 춘양면 소재지가 나온다.

춘양면 소재지의 시가지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 북쪽으로 가다가 학산교를 건너기 전 문화재 안내판을 바라보며 우회전 하여 조금만 가면 크고 맑은 내인 운곡천을 만나게 된다.

이 운곡천을 가로질러 춘양을 동서로 잇는 다리가 운곡교인데,

다리에 채 이르기 전 우측 숲속에 정자가 숨은 듯 자리 잡았다.
정자와 집들 사이에 작은 길이 있고,

그 길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한수정(寒水亭) 앞 주차장이 있다.

또 다른 방향 길은 36번 도로에서 88번 도로를 따라 오다가 춘양면 소재지 쪽이 아닌 우회도로를 타고 오다보면 한수정이 보인다.

춘양 시내로 들어가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운곡교를 건너자마자 다시 한수정을 끼고 작은 길로 좌회전 하여 들어가면 주차장에 이르는 길이다.

한수정은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건물 당호에 걸맞게 많은 사림들이 모여 서로 교유를 나누고 강학을 통해 학자를 배출하였다.
한수정은 1990년 불의의 화재로 건물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탔다.

1992년 불에 손상되었던 부분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한수정은 방형의 대지 중앙부에 건물을 남향으로 앉히고, 그 앞쪽에 출입문인 사주문을 두었다.

정자 주위에는 막돌로 축대를 쌓아 만든 와룡연(臥龍淵)이라는 연못이 둘러싸고 있으며, 와룡연 주변엔 큰 나무들이 버티고 서서 연못과 정자를 보호하듯 굽어보고 있다.

좌측 연못과 정자 사이에는 초연대(超然臺)라는 넓은 바위 위에 작은 동산을 만들어 두었다.
사주문 우측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300여 년의 느티나무 1그루가 있는데, 밑둥치에 세월에 곰삭은 속살을 드러낸 채 이 건물의 역사를 지켜보았노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사주문 밖의 넓은 공터에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예전에 이 터에 관리사가 있었으나 소실되었다고 한다.


건축 구성

이 건물은 T자형으로, 세로축에는 맨 앞쪽에 2칸통 온돌방을 두고, 그 뒤편에 4칸통 대청을 놓았다.

가로축에는 좌측에 2칸통 온돌방을 두고, 그 우측에 1칸 대청을 놓았다. 가로축 온돌방 좌측과 배면에는 툇마루를 들이고, 건물 둘레 모두에는 쪽마루를 시설했다.

정면, 좌측면 뒤쪽 일부, 배면, 우측면 쪽마루에는 계자각난간을 부설하였다. 가로축 온돌방 정면 좌측 칸에만 맹장지 3분합들문을 달고, 두 온돌방 나머지 모든 칸마다 쌍여닫이 또는 외여닫이 띠살창호를 달았다.
두 온돌방 천장은 고미반자로 꾸미고, 대청은 가로축 1칸 대청 상부 중앙 일부에만 우물반자를 시설했다.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 온돌방 기둥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원주를 세웠다.
기둥 상부에는 밑면을 초새김한 첨차형 부재를 끼우고 양단에 소로를 얹어 창방을 받게 하고, 창방 위에는 소로를 놓았다.

5량가로 대량 양측 하부에는 안팎을 초각한 보아지가 받쳐져 있고, 종량 위에는 소로를 끼운 제형판대공이 세워져 있다.

지붕부는 홑처마로 하여 세로축 정면에는 팔작지붕을, 가로축 양측 면에는 맞배지붕을 얹었다.


현판

한수정(寒水亭)

: 한수정(寒水亭)
소 재 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원소재지 : 안동부 춘양현)
건 축 주: 권래(權來)
건축시기: 1608년(선조 41)
중건시기: 1992년
소 유 자: 안동권씨 충정공파 문중(관리자 : 안동권씨 충정공파 문중)
문 화 재:

시도유형문화재 제147호, 1982-02-24 지정, 1동

철길 따라 만산고택 지나 태고정까지, 의양리.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는 춘양면소재지가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은 봉화의 여러 면소재지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지 않나 여겨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춘양이 비교적 넓은 삶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춘양목의 집산지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봉화 현동 사이의 35번 도로는 방전에서 88번 도로로 갈라져 영월 쪽으로 북행한다.

방전으로부터 88번 도로가 춘양을 향한 북행을 시작한다면

, 법전을 거쳐 온 철도는 수청거리에 이르러 춘양을 향한 북행을 개시한다.
그 두 지점 사이의 북쪽 삼각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춘양면사무소가 있는 의양리이다.

북행을 개시한 철도가 고갯마루를 넘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의양리 지역은 남산리이다.

남산고을은 철로 주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동향을 하고 있다.

의양의 남쪽 산록에 있다고 하여서 남산리, 또는 남산편이라고 한다.

남산편을 지난 철도는 평촌고을에 이른다.

이곳은 조금 평탄한 들로, 남서쪽 방향으로 의양에서 제일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돌마 또는 들마라고도 하며, 안동권씨가 세거하여온 마을이다.
평촌을 지난 철도는 괴정못티고을에 이른다.

만석봉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인데, 300년 전 재령이씨가 지은 괴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괴정못티 위쪽으로 나아간 철길은 현말 서편을 훑고 올라간다.

현말은 현동 또는 현리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고려 충렬왕 때 호군 김인궤가 개척하였다고 한다.

1907년 봉성에 위치하던 현청이 화재로 소실되자 이 마을에 현청을 두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여 현청은 1913년에 현재 봉화 읍내로 다시 옮겨갔다. 현말이라는 이름은 현청이 있었던 고을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곳은 현재 춘양면사무소 영역의 북서쪽 부분을 이룬다.

이곳의 북쪽으로는 만산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철길은 만산고택 서쪽으로 올라서서 태고정 아래쪽으로 휘돈다.

태고정 북쪽으로는 낙천당이 있다.

이 부분은 낙천당고을이라 불린다.

낙천당은 태고정과 나란히 서 있는 정자이다.

이곳에는 김해김씨가 임진왜란 이전부터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이곳에 김장군·강장군·곽장군 셋이 난을 피해 살다가 난리가 끝나 한양으로 돌아갈 때 즐겁게 지냈다고 하여 정자를 짓고 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을도 이 정자의 이름으로 불렸다.
태고정에서 휘돈 철길은 호를 그리며 돌아서 동쪽으로 굽어 내린다.

그리하여 현 마을의 동편에는 역사가 자리 잡게 된다.

역사의 위쪽, 철길 동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운곡이다.

마을 동쪽의 높은 산에 늘 구름이 머물고 신선이 사는 곳 같다고 하여 운중선인이라 하였고, 그 뜻을 담아 운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역사의 남서쪽, 시내 서편으로는 한수정이 있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동촌·동마·한수리 등으로 불린다.

한수정은 충정공 권벌이 지은 정자이다.

여기에는 300여 년 전에 남양홍씨들이 자리를 잡았다.

의양리는 법전을 지나 동행한 철길이 춘양을 싸안으며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서는 곳,

그 엄지손가락처럼 돌출된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출처 : 어풍대08블로그임다
글쓴이 : 어풍대08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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