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정 시인의 시적 세계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첫 째, 여류시인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직조해내는 시적 언어들이 선명하고 명징한 이미지의 꽃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정제된 언어와 철학적 사유로 빚어내는 맑고 투명한 시안詩眼을 견지한 채, 고즈넉한 서정抒情의 집 한 채를 생성시키고 있다. 또한 권오정 시인의 정신세계는 정갈하고 고결하기까지 하다. 동양화를 넘나들며 붓끝으로 생성시킨 심상들을 활자로 거둬들이듯 유려한 문체와 선 굵은 시어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예술의 깊이로 뿌리내려야 맛 볼 수 있는 집중과 몰입의 미학으로 환한 세상을 펼쳐내고 있다.
둘 째, 신선한 하늬바람을 동반하고 있는 가운데 ‘청주를 지키는 시인’이라는 닉네임처럼 청주의 명소, 무심천의 캐릭터character)를 꽃피우고 있다. 인생의 깊이로 빚어내고 있는 절대고독과 기다림의 미학이 잔잔하게 불어오고 있다. 그 기다림 속에 자성적自省的 삶이 묻어난다. 바람과 무심천이 만나, 가을의 전언 영혼의 흔적을 을 남긴다. 시인은 상상력의 천변에서 일군 감동의 이미지를 꽃 피워 아름다움은 물론, 그 감동의 향기와 영혼의 울림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무심천에 바람 불면」은 박성균 작곡, 테너 홍승완이 청주 시민회관에서 공연한 바 있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인은 무심천에서 만난 바람을 섬세한 사유의 붓으로 새로운 통섭의 미학을 생성시키고 있는 가운데, 간결하고 정제된 시어 속에 인생의 의미마저 숙성시키고 있다. 더불어 행과 행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정연한 리듬감이 살아있는 짤막한 시어마다 생의 깊은 맛을 우려내고 있는 철학적 성찰이 묻어나면서, 마치 사람이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의 인생 파노라마(Panorama)와 같은 삶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무심천에 바람 불고 꽃 피는 날마다 하냥 웃는데, 붉은 단풍질 때면 푸른 눈물을 떨구고 만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시인의 애절한 정한情恨이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다.
바람은 살아있음을 상징하는 에너지원이다. 오죽하면 풍력 에너지라고 불리겠는가. 시인은 온 몸에 바람을 들이며 꽃을 피워 올리고 붉은 단풍마저 물들인다. 무심천의 꽃이 되어, 탐스럽고 아름다운 빛깔로 청순한 시월의 여인처럼 웃고 울고 있는 모습이 마치 행복을 넘나드는 벌과 나비의 쉼 없는 날개 짓과 무에 다르랴.
시를 쓸 수 있는 여건 조성은 매우 중요하다. 시를 반드시 쓰고자 하는 열정이나 영감靈感, 시상詩想 이를 시적 순간이라 부른다. 시적 순간은 도처에 깔려 있다. 아름다운 시를 쓰려면 치열한 삶 그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자연스럽게 몰입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시인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비로소 시를 쓸 수 있는 소재와 주제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장미가 눈부신 자태를 보이며, 금방 물들어 버릴 것 같은 절정의 짙은 향기를 고즈넉하게 피어올리고 있듯이, 권오정 시인은 도도하리만치 절정의 경지를 선보이며, 청주시 가경골에 대한 소회素懷를 꽃 피우고 있다.
가슴속 비인 곳에
매화 한 그루 심어놓고
봄을 기렸더니
엄동에 눈 내려
매화가지 덮으니
꽃인 듯 눈인 듯
싸늘한 맑은 향이
옷깃을 스치네
- 권오정 「내 가슴에 매화 한 그루 심어두고」 일부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피는 하얀 꽃에서 은은하게 배어나는 매향梅香, 선비들은 매화를 최고의 꽃으로 여겨왔다. 아울러 우리나라 대표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는 그림을 그려 마련한 3,000냥 중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한다. 지조 있고, 고결한 선비의 기상을 담아내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인지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결백, 정조, 충실’등이 있다. 매화 한 그루를 가슴에 심을 정도로 시인의 고매한 정신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시인은 예리하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거대한 문학적 이미지를 발견하고 서정성 짙은 감성의 붓을 터치하며, 지상의 풀잎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꽃은 아름다운 향기로 흔적을 남기고, 권오정 시인은 수사적修辭的 언어로 감동의 하모니를 이루며,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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