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
글쓰기와 책읽기의 관계에 주목해 온 시간이 제법 된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고 그저 생각나면 끄적거리는 정도다. 하지만 좋은 글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그렇게 읽을 좋은 글은 주로 고전에서 찾는다. 그것도 우리 선조들의 글 속에서 말이다.
그런 연유로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박지원과 이덕무의 글들이다. 이들이 남긴 옛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감정과 의지를 알아보고자 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넘지못 할 벽이 있다. 그것은 한자라는 벽을 넘지 못하기에 번역자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설흔이라는 작가와 정민 교수다. 설흔의 책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통해 설흔이라는 또 한사람의 독특한 글을 쓰는 이를 만났다. 설흔은 옛글 속의 행간을 읽으며 글쓴이들의 심사를 헤아려보는 작업을 주로하는 사람으로 매력적인 글을 남기고 있다. 소설가인 설흔에 비해 한문학을 전공한 정민 교수는 옛글에 보다 직접적이다. 그의 저작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에서 다시 정민교수의 시각을 통한 박지원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연암 박지원이다. 정민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조선의 대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다양한 글을 만나는 기대감이 있다.
고전문장론에서는 옛사람들의 글 읽기와 그에 의거한 글쓰기에서 주목하는 점을 담았다. ‘소리내서 읽기,정보를 계열화하여 읽기, 의문을 품고 확산적으로 읽기,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간을 읽기, 텍스트를 넘어서 읽기’ 등의 다섯 갈래의 독서방법론에 이어 고전문장론에서 법(法)의 문제와 문장 이론사의 세 유파에 관한 논의를 정리했다. 이를 ‘온달전’를 통해 편장자구 분석으로 옛글의 단단한 짜임새와 행간 읽기의 실제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박지원의 편에서는 그의 문장론과 독서론을 살펴보고, 잡록이나 서신 자료 중 독서 관련 글을 검토하고 있다. 글쓰기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는 ‘황금대기’, ‘홍덕보묘지명’의 명사, ‘주공탑명’, 연암 척독 소품 등의 분석을 통해 연암 글의 행간을 읽어내고, 연암 박지원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과 그 글에 담긴 예술미를 살펴본다. 또한 뒤늦게 발굴된 편지글 모음인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연암선생서간첩’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동안 박지원의 생애와 인적교류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검증을 해 본다.
정민 교수가 본 연암의 편지글의 일부인 척독은‘시치미 떼기다, 말꼬리 흐리기, 통렬하게 찌르기, 장황하게 늘어놓기 베껴서 짜깁기’등으로 연암의 글쓰기의 특징을 밝힌다. 연암의 글 속에서 해학을 찾는 이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여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연암 박지원, 조선후기 북학파의 한사람으로 청나라와의 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열하일기의 저자로 알려졌다. 이러한 단편적 이해를 넘어 연암이 남긴 글 속에 담긴 감정과 의지를 밝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정민 교수의 이 책을 통해 대문장가로 일컬어지는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란 무엇이고 글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심사숙고하는 기회를 만났다.
양반의 굴레를 벗고
사람의 삶에서 타고난 조건이 얼마나 작용할까? 신분제가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던 시절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출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다. 어떤 사람은 두루두루 갖추고 태어나 그것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도 있다. 또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태어나 하나 둘 갖추어 나갔던 사람도 있다. 각기 다른 조건에서 태어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것으로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역사를 살았던 사람을 찾아보고 그의 생애를 살피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지금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우리 역사에서 천재로 태어났지만 불우한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꼽는 사람이 몇 있다. 조선시대에는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도 그들 중 한명이 아닐까?
박지원(朴趾原)은 1737(영조13)~1805(순조5)년간을 살았던 사람이다. 다분히 소설가로 기억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가 남긴 열하일기라는 불후의 명작을 비롯하여 대표적인 소설로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이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북학파로 불리는 실학자의 선두에 선 사람이다. 반남 박씨, 내노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의 영향과 당쟁에 휘말려 관직에 나가는 것이 좌절되고 정조의 등용으로 관직에 나가 자처하여 한직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덕무, 박지원, 이서구, 홍대용 등 백탑파를 중심으로 실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동안 열하일기라는 박지원이 남긴 견문록과 여러 가지 소설을 통해 작품으로 알고 있는 박지원의 생애와 삶에 대해 주목하는 소설이 등장했다. ‘양반을 벗고 사람을 담으려오’는 혼란스러웠던 시대, 가슴에 품은 뜻을 펼치기엔 너무나 각박했던 시대를 살았던 박지원의 가계, 인생행로, 벗과의 사귐, 사랑에 대해 흥미 있게 그려낸 것이다.
‘양반을 벗고 사람을 담으려오’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실학파로써 그가 남긴 작품과 그 속에 담긴 사상보다는 개인적인 삶 그리고 그 주변부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백탑파를 중심으로 그들과의 교류에서 보여주는 박지원의 실학에 대한 확고함은 있으나 그것의 근간이 되는 사상의 탐구과정에 소홀하게 그려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소설적 구성이라는 성격상 옥봉이라는 처자와의 교류를 그려가는 점을 보면 사상가로써 박지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나 싶다.
박지원의 소설의 특징을 패관문학이라 한다. 사대부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에게 두루두루 읽힐 글을 쓰고자 했던 결과가 연암체라는 독특한 글로 나타난 것이리라.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등용해 준 왕 정조로부터 지탄의 빌미가 되기도 했던 그의 글이 그의 이러한 뜻대로 얼마나 일반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과 사회 주도층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연암 박지원의 깊은 마음가짐은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으리라.
타고난 신분이었지만 그 신분으로 인해 더 암울한 생을 살았던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박지원의 그런 환경을 백분 활용하여 ‘양반을 벗고 사람을 담으려오’ 라는 시각으로 바라봤다. 계급사회에서 계급에 우선하여 사람의 가치를 담으려 했던 사람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어쩜 박지원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를 물질문명의 발달에 치어 그 존재감을 잃어가는 현대 우리들에게 더 주목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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