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보 (音步 meter)
- 요약 : 시가의 음률적 단위를 이루는 음군. 운각·음각·시각이라고도 하며, 운문의 최소 운율을 측정하는 단위가 된다.
- 설명 :
- 시가(詩歌)의 음률적 단위를 이루는 음군(音群). 운각(韻脚)·음각(音脚)·시각(詩脚;foot)이라고도 하며, 운문의 최소 운율을 측정하는 단위가 된다. 음악에서의 마디(小節;bar)에 해당하며, 음성의 장단(quantity)·강약(stress)·고저(pitch) 등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적 단위이다. 각국 언어에서 음보는 <각(脚)>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다. 원시시대에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를 때 발장단의 단위, 즉 좌·우나 우·좌의 2보 또는 좌·우·좌의 3보가 차지하는 시간을 1음보로 보았기 때문이다. 시의 한 행이 1개의 음보로 되어 있을 경우 1보격(monometer), 2개의 음보로 되어 있을 경우 2보격(dimeter)이라고 한다. 한국의 시가는 주로 음절률(音節律;자수율)로 이루어지는데, 3·4조나 7·5조의 운율에서 각 음군을 음보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 3·3·4조 운율에 3음보격 노래이다. 한편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시에서는 실러블의 장단, 영시에서는 실러블의 강약, 중국 시에서는 음의 고저가 음보의 기준이 된다. 영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음보로는 약강격·강약격·약약강격·강약약격이 있다. 이 중 약강격이란 강세 없는 1개 음절 다음에 강세 있는 1개 음절이 뒤따르는 음보로, 예를 들면 re|pórt가 그런 경우이다.
전국청소년시조문학캠프 <현대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
<1318, 청소년을 위한 시조 강좌>
현대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
홍 성 란
1. 시조란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시조는 우리 민족이 천년을 다듬고 빛내온 민족시가이다. 시조는 그렇게 우리 민족이 다듬고 빛내오는 동안 3장 6구 12음보라는 정형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한시의 절구(오언절구, 칠언절구) 일본시의 와카(당카 5,7,5,7,7 하이쿠 5,7,5 등 5음과 7음을 번갈아 사용하는 정형시), 서구시의 소네트에 비견되는 한국 문학사가 낳은 가장 짧은 형태의 정형시이다.
그러면, 시조의 3장 6구 12음보(3장 12마디)라는 형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3장이 초장, 중장, 종장을 가리킨다는 것쯤은 우리도 잘 안다. 그럼 6구 12음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각 장이 2개의 구로 이루어져 초,중,종 3장은 6개의 구가 되는데, 하나의 구는 2개의 음보로 이루어지므로 한 장은 4음보가 되어 초,중,종 3장은 모두 12개의 음보로 이루어짐을 가리킨다.
이제 우리는 실제 작품을 통하여 형식성을 알아보기 전에 우리시가 율격의 전통적 분석방법인 음수율(音數律)이라는 시조율격 분석에 따른 시조창작법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시조는 초장 3, 4, 3(4), 4 중장 3, 4, 3(4), 4 종장 3, 5, 4, 3이라는 음절수로 이루어지는 음수율을 지니고 있다(이 음수율은 전적으로 초보자에게 시조창작의 전범을 보이기 위한 시조 율격의 제시이다). 이를 실제 작품으로 도식화하여 살펴보자.
투박한 나의 얼굴 / 두툴한 나의 입술 초장
1구 2구
3 4 3(4) 4
①음보 ②음보 ③음보 ④음보
알알이 붉은 뜻을 / 내가 어이 이르리까 중장
3구 4구
3 4 3(4) 4
⑤음 ⑥음보 ⑦음보 ⑧음보
보소라 임아 보소라 / 빠개 젖힌 / 이 가슴. 종장
5구 6구
3 5 4 3
⑨음보 ⑩음보 ⑪음보 ⑫음보
이 작품은 조운(1900∼? 월북)의 [석류]이다. 먼저 의미내용을 살펴보자. 이 작품을 읽게 되면 강렬하고 생생하게 잘 익어 터진 석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그 뜻을 새기며 읽노라면 우리는 곧 [석류]가 시인 또는 시적 화자의 마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석류의 겉모습처럼 시적 화자는 "투박"하고 못생겼지만, 마음은 붉게 익어 터진 석류와도 같이 열정적이다 혹은 몹시 간절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은 "임"을 향하여 익어 터진 석류의 붉은 가슴속 같은 자신의 속마음을 "빠개 젖"히 듯 열어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석류]를 통하여 시조의 형식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우선 시조는 제시한 바와 같이 3장 곧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지며, 각 장은 2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장이 2개의 구로 이루어지니 시조 3장은 6개의 구로 이루어지고, 원으로 표시한 숫자와 같이 시조 1수는 12개의 음보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시조는 '3장=6구=12음보'라는 정형성을 가진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종장의 첫째 마디는 반드시 3음절로 이루어지고, 둘째 마디는 5음절에서 8,9음절 정도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점이 초장, 중장과는 다른 종장의 특별한 율격장치이다. 이 3, 5, 4, 3이라는 종장의 율격장치는 시조가 3,4조나 4,4조가 무한히 이어지는 개방의 형식이 아니라, 한편의 시조를 종결지어 완결미를 추구하는 정형양식임을 말해준다.
조운의 [석류]는 시조 율격(음수율)에 잘 들어맞는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조의 정형성을 말할 때 '융통성 있는 정형시'라는 말을 한다. 이 '융통성 있는 정형시'라는 말은 음절수를 정확히 맞추는 정형시라기보다, 우리말의 자연스런 발화에 따라 각 음보의 음절수는 1, 2음절의 가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점은 4장의 작품감상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편의상 앞에 제시한 [석류]는 초중종 3행으로 표기하였으나, 실제로 조운은 빗금으로 표시한 바와 같이 3연 7행으로 표기하였다)
시조의 유형을 간단히 살펴보면, 평시조와 엇시조, 사설시조가 있고 이은상(1903∼1982)이 시도한 양장시조가 있다. 평시조에는 [석류]와 같이 3장 1수로 된 단시조, 몇 수가 이어져 있는 연시조가 있다. 엇시조는 한 장이 6음보로 되어 있어 평시조보다는 조금 늘어나 있는 형태이다. 사설시조는 두 장이 6음보로 늘어나 있거나, 한 장 이상이 8음보 이상으로 늘어난 형태를 말한다. 양장시조는 초장과 종장으로 이루어진 시조이다. 이제 구체적인 시조(평시조) 쓰기에 다가가 보자.
2. 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
시조를 쓴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조의 율격을 바탕으로 하여 체험적 사실 또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잘 정리하여 다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는 특별한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일상에서 만나고 부대끼는 일들(체험적 사실)이 느닷없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이 '느닷없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평소에 느끼지 못한 감흥, 깨달음이 어떤 대상(사물 또는 관념)으로부터 문득 생겨났다는 것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필자의 작품을 소개한다.
지렁이 맘 건드려 매봉산길 볕 좋은 날
흙 발라 일광욕하게 하는 것도 그의 일
개미떼 상두꾼 하게 하는 것도 알 수 없는 그의 일.
-졸시, [어떤 장난질] 전문
필자는 동네 매봉산에 거의 매일 오른다. 산길을 걷다보면 연필 굵기만 한 지렁이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 산길의 지렁이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보다는 해가 쨍쨍 드는 날 기다란 몸둥이를 드러내 겁쟁이들이 호들갑을 떨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축축한 물기로 피부를 보호해야 할 지렁이가 하필 해가 쨍쨍 드는 날 지상에 나와 몸둥이에 흙모래를 묻히고 괴로워하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결국 "지렁이"는 그러다가 죽게 되고, "개미떼"가 나타나 그들의 양식인 "지렁이"를 "상두꾼"처럼 떠메고 가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이 조물주의 장난이 아닌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렁이 맘 건드"린 것은 조물주이고, "매봉산길 볕"이 "좋은" 것은 "지렁이"가 "볕"들기를 바랬기 때문이며, 그 "볕 좋은 날" "지렁이"가 몸에 흙모래를 묻히고 "일광욕"을 한다는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다. 산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런 일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글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가슴단추 여미게 하는 세찬 바람 부는 날,
아버지, 나무가 자라는 게 아니라 산이 자란다는 걸 산에 와서 알았어요. 산이 나무를 지키는 게 아니라 어버이나무 산을 지킨다는 걸 산길 가며 알았어요. 매운 손 어버이뿌리 걸음마 놓는 대로 어린 산은 꽃뱀 같은 산허리 길을 내고 뾰족한 성깔 깎아내고, 메마른 뺨 어버이뿌리 흙모래 마음 바윗돌 마음 단단히도 붙잡아 벼랑 아래 구르지 않고 센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나이 들어왔다는 걸 나는 이제 알았어요. 뭇새들 감싸는 가지, 어버이 벌린 두 팔 못나게도 닮아왔다는 걸 이제 나는 알았어요.
불거진 아버지 심줄 같아 늙은 뿌리 밟지 못해요.
-졸시, [힘줄-그리운 아버지께] 전문
사설시조인 [힘줄] 역시 산행에서 얻은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일년 전에 돌아가셨다. 살아 생전에 어버이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불효한 자식이기에 회한으로 문득문득 깊은 슬픔에 잠기곤 한다. 우리는 산길을 가며 큰 나무의 밑둥으로부터 뻗어나오는 굵은 뿌리들을 만나게 된다. 가끔 이 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하도 밟고 지나다녀 땅 위로 드러난 뿌리는 겉껍질이 벗겨지고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기도 한다. 폭우가 며칠을 내리고 "센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나는 산사태가 날 지경에 이른 산의 몸을 보았다. 이때 문득 아, "산이 나무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나무"가 "산을 지"키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기둥줄기몸으로, 가지몸으로, 잎새몸으로, 뿌리몸으로 산을 돌보는 것이로구나. "어버이" 같이 "뿌리"가 "흙모래" 같은 여린 마음을, "바윗돌" 같은 차갑고 모진 마음을 "단단히도 붙잡아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어린 산"은 자라나고, 자라면서 험한 산의 "뾰족한 성깔"이 다스려져 두리뭉실 편안한 어른 산으로 변해 가는 거로구나! 마치 한 사람이 어버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깨우치며 성장하듯이. 무심코 지나다니던 산길에 도드라진 늙은 나무뿌리에서 나는 어느 날 '느닷없이' "두 팔" 벌려 나를 감싸주시던 아버지의 굵은 힘줄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다시 '시 쓰기'로 돌아가 보자. 시 쓰기라는 것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느닷없는 감흥이나 깨달음을 정리하면서 시적 경험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시적 경험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여, 내 마음을 움직이는 그 대상(소재, 글감)에 대하여 좀더 깊이 있게, 다양하게 관찰하고 생각하여 상상력을 더해가면서, 그 시상에 알맞은 어조(말투)로 시를 써나간다는 것이다. 이때 대상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가 주제의 문제가 될 것이다. 주제는 비록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지금까지 남들이 표현하지 않은 새로운 발상으로써 아주 개성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 주제에 대한 개성적인 표현과정을 시상전개라 할 수 있는데, 이 시상의 전개는 주제와 관련된 심상들로 짜여져야 하며 주제를 향하여 집중되어야 한다. 주제의식의 선명성,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떡볶이를 만드는 데는 떡볶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떡볶이에다가 된장을 풀어 넣는 일은 떡볶이의 참맛을 내는 데 방해가 될뿐더러 요리를 망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서 주제와 상관없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거나 괜히 근사해 보이는 말(시어)을 해서 주제를 흐려서는 안 된다. 시조라는 서정시는 가장 짧은 정형시이고, 순간의 감흥을 함축된 시어에 담아 간결하게 표현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체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하여 시를 완성해나간다고 할 때, 이 시의 주제를 충실히 그려내기 위해서는 대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어를 찾아내야 한다. 가장 적합한 시어를 찾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대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이 있는 생각은 좋은 시어를 뽑아 올릴 수 있게 한다. 사실 좋은 시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늘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시 문장 속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관계되고 연결되어 새로운 느낌을 주게 되기도 하고, 그 시가 살아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시의 문맥 속에서 하나의 시어(낱말), 한 줄의 시행, 하나의 연이 시를 생생하게 해줄 때 우리는 이를 시의 눈(字眼)이라고 한다. 이 '시의 눈'은 우리가 시를 쓸 때 남다른 주제의식을 가지고, 늘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표현하고자 할 때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시를 통하여 우리는 '시의 눈'을 살펴볼 수 있다.
지상의/ 벌레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밤//
다 못 쓴/ 나의 시/ 비워 둔/ 행간 속을//
금 긋고/ 가는 별똥별/ 이 가을의/ 저 은입사(銀入絲)!
-유재영, [다 못 쓴 시-가을 詩] 전문
애비야,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말썽 피운 아이들을 가지치듯 자르지 마라
봉분(封墳) 옆 산죽(山竹) 하나가 말귀를 트고 있었다.
-이한성, [어머니의 말·4] 전문
달빛은 장독대의 차돌보다 차고 희다.//
천지간/ 혼자 남아/ 외톨이로/ 난 외로워//
물방아/ 심심산골의 달빛/ 밤새도록 퍼붓다.
-이문형, [달빛] 전문
귀뚜라미여, 잠시/ 울음을/ 그쳐다오//
시방/ 하느님께서/ 바늘귀를/ 꿰시는 중이다//
보름달/ 커다란 복판을/ 질러가는/ 기/ 러/ 기/ 떼//
-이해완, [가을밤·1] 전문
시를 이해하는 태도는 그 시를 읽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시와 같이 굵은 글씨로 나타낸 부분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낯선 표현이거나, 특별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대목으로, 시의 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독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다 못 쓴 시]에서 "소리"가 "씨앗처럼/ 여무는/ 밤"의 "벌레"는 얼마나 서늘하고, 맑고 또렷하게 울어대는 것일까? 이 선명한 이미지에 버금가는 강렬한 메시지가 [어머니의 말]에 들어 있다. 목수는 곧게 잘 자란 나무들만을 베어 재목으로 쓰니 못생긴 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키게 된다. "못생긴 나무"처럼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훗날엔 그 나름의 특별한 몫을 해낼 테니, 학교에서 아이들을 함부로 징계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이다. 오랜 연륜에서 오는 어머니의 이 충고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 아들에게 얼마나 사려 깊은 태도를 지니게 했을까? [달빛]을 보자.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장독대"에 놓인 "차돌"이 "달빛" 받아 환하게 빛난다. "외톨이" "외로"운 시인이 달밤에 나와 하얀 "차돌"을 만져본다. 시인은 그 차가운 "차돌"처럼 "달빛"도 "차"가울 거라 느끼는 것이다. 시인의 "외로"운 마음이 세상을 차갑게 느끼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외로"운 시인이 서있는 [달빛] 아래 "물방아"도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물방아"처럼 "달빛"은 또 "밤새도록 퍼붓"는 것이다. 이 작품에 동원된 시어, 어휘 전체가 이 시조를 생생하게 해주고 있다. [가을밤·1]의 시인은 훤한 "보름달"이 뜬 밤, 하늘 "복판"을 가로지르듯 일렬횡대로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하느님께서 바늘귀를 꿰시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참신한 발견이다. 이렇듯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작품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눈이 확 뜨이는 '시의 눈'을 가진 시를 쓰기 위하여 어느 시인이 작품분석에 적용한 고백, 묘사, 발견이라는 세 가지 시약(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고백의 기법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한 점 거짓없이 부끄럼 없이 진솔하게 풀어나가, 읽는 이로 하여금 "아, 그렇구나!"하고 공감하게 하는 시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묘사의 기법은 대상을 충실히 그려내는 언어적 형상화 또는 시를 읽으며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심상, image)이 떠오르게 하는 시적 기법이다. 발견이란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될 때, 특별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 시 문장 속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될 때 또는 하나의 낱말이나 표현으로부터 그 시가 '생생하게 살아나게' 될 때라고 풀이할 수 있다.
시가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시가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우리에게 낯익은 이야기라서 그저 무덤덤하게 읽히는 글이 아닌, 처음으로 읽는 듯 하여 아주 신선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신선한 느낌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적 대상을 향하여 의문과 호기심, 경이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나가야 한다. 이 대상에게 묻고, 대상의 목소리를 듣고(상상력) 그 목소리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을 꾸밈없이 표현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리한 곳,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풍경을 선명하게 그려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작품은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3. 제목 붙이기와 퇴고
제목을 붙이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제목을 정해놓고 작품을 쓰는 방법과 작품을 다 쓴 다음에 제목을 붙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제목을 정해놓고 작품을 쓰게 되면 제목이 주는 구속성 때문에 주제를 향한 통일성을 이루어 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활달하고 자유롭게 시상을 전개해나가는 데는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반면에 작품을 다 쓴 다음에 제목을 정하게 되면 자유롭고 풍부한 시상전개로 활달한 작품이 될 수 있으나, 잡다한 시상이 끼어들어 주제의식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주제가 결정되면 그에 알맞은 제목을 우선 붙여놓고, 작품을 다 쓴 후에 처음에 정한 제목과 주제가 일치하는지 깊이 생각하면서 개성적인 제목을 붙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목은 소재를 그대로 쓴다든가, 시조의 어느 한 장의 마디를 그대로 쓸 수도 있다. 또는 잘 사용하지 않아 새롭게 느껴지는 낱말이나 기호를 사용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다. 참신하게 다가오는 제목들을 살펴보자.
[느티나무의 말], [고아 말세리노의 입김], [이 나무는] -김상옥
[물의 실핏줄이 보인다], [소나무 경(經)], [꽁치와 시] -박기섭
[연대기적 몽타주], [댄서 박하경], [광주시 충장로 우다방] -이재창
[시간의 비늘은 반짝인다], [팔달교를 지나면 내가 보인다] -이승은
[죽은 나무를 심는 부자(父子)], [봄, 협궤열차] -정수자
[저무는 가내공업 같은 내 영혼의 한 줄 시], [밤의 배꼽] -이달균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 [모짜르트 베이커리] -강현덕
끝으로 퇴고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알아보자. 시조 쓰기에서 퇴고는 참으로 중요하다. 시조가 정형시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정형성에 맞게 써야 하지만 그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먼저 시조는 초장 3,4,3(4),4 중장 3,4,3(4),4 종장 3,5,4,3이라는 정형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시상을 전개한다. 그리고 각 장은 4개의 마디(음보)로 이루어지는데, 각 마디의 음량(음절수)은 우리말의 어법에 따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자유롭게 써나간다. 그러나 종장 첫째 마디는 3음절, 둘째 마디는 5음절에서 8,9음절(2어절)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켜야 시조라 할 수 있다. 시조는 정형시인만큼 정제된 짧은 시형이다. 따라서 군더더기는 없애버리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 작품에서 지워도 뜻이 통하는 말은 다 지워버린다. 그리고 시어가 중복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끝으로 내가 쓴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살펴야 한다. 읽으면서 부자연스러운 데는 없는지 잘 살펴 다듬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때 한편의 시조는 조화를 잘 이루어, 즐거운 가락 곧 해조(諧調)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4. 우리들 작품 감상
바람으로 날아오고
햇빛으로 스며든다
몇 날을 그리 울던
빗소리가 그치더니
하늘은 세수한 얼굴
맑고 차고 푸르다
건너편 아파트 창가
밤늦도록 불이 환해
나처럼 또 그 누가
가을 詩를 쓰고 있나
아니면 저 달을 불러
그리운 말 주고받나
-김봄(대구 관음여중 2학년), [가을은] 전문
(제1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중고등부 차상)
이 작품은 6연 12행 다시 말해 2수로 된 연시조다. 김봄은 가을을 만들어내는 시어들을 동원한다. 우리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신선한 "바람"이 있고, 알곡이 영글고 과실에 단물이 배이게 하는 "햇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 그친 뒤 달개비꽃빛처럼 "차고 푸"른 "하늘"이 있기에 가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가을을 가을이게 하는 것은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가을 詩"를 쓰는 서정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김봄의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가을은 잊었던 "달"을 바라보며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해내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계절이라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이라는 제목은 깔끔하면서도 여운을 주는, 이 작품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서울 시청 돌집 지붕 위에
까치들이 삽니다
숲도 없고 산도 없어 항상 지쳐 있습니다
몸 편히 쉴 곳이 없어
이 아침도 울어댑니다
까치밥 하나 없는 돌집 위는 춥습니다
날마다 왁자한 소음
눈 아픈 네온불빛
둥지 틀 삭정이 없어
새삼 서럽게 웁니다
황금빛 벌판도
날아볼 하늘도 없습니다
넘쳐나는 차량행렬 흔들리는 빌딩의 숲
눈코귀 숨이 막혀서 까작 까작 울뿐입니다
-김승원(경기 안양 평촌고 2학년), [서울 까치] 전문
(제2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중고등부 장원)
3수의 연시조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의미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하여 9연 14행이라는 개성적인 표기를 하고 있다. [서울 까치]는 "둥지 틀 삭정이"도 없고 "까치밥 하나 없는" 삭막하고 인정 없는 "서울"이라는 도시풍경에 대한 관찰로부터 태어났다. "서울 시청" 부근에서 "넘쳐나는 차량행렬"이 내뿜는 매연 때문에 까치는 "숨이 막혀"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하여 김승원이 까치의 생태환경만을 걱정하고 고발하려는 것은 아니다. 까치가 살 수 없는 생존환경에서는 인간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리의 일상사와 주변 환경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통찰에 있다. 우리는 또 이 작품을 통하여 앞서 말한, 시조가 '융통성 있는 정형시'이기 때문에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발화에 따라 각 음보는 1,2음절 음절수의 가감이 가능하다는 점을 잘 살필 수 있다.
끝으로 우리들의 작품을 몇 편 더 감상해 보기로 하자.
비바람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내리쳐도
나는 꼼짝 않는 돌부처가 되기 위해
시련의 고통 참으며 새 천년을 견딥니다.
나는 과연 어디서 나서 한 개 바위가 됐을까요
불같은 그리움이 눈감고 굳었을까요
파랗게 물든 이끼는 내 슬픔의 빛일까요.
사람들은 내 몸을 툭툭 치고 갑니다
금가고 흠집난 살점 한겹 한겹 떨친 아픔
무언가 새로 태어날 몸부림을 합니다.
-임정집(울산 중앙고 1학년), [바위] 전문
(제2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중고등부 차상)
지은아, 젊었을 때 많이많이 놀아둬라.
늙으면 노는 것도 재미가 없어.
당신이 해 주신 말씀이 문득 생각납니다.
아무리 허리를 펴도 내 허리만큼 밖에 못 올라오시는
당신 얼굴에 늘어나는 주름살 보면
땀방울 힘없이 흐르는 그 꼬불꼬불한 길을 보면
당신 허리에 가만히 내 손을 얹고
길가의 코스모스 어루만지는 가을 바람 따라
내 등에 당신을 업고서 걸어가고 싶습니다.
-김지은(경기 광명 철산여중 2학년), [할머니] 전문
(제2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중고등부 차하)
초록빛 손짓으로 웃고 있는 너를 보면
내 삶도 너를 닮아 아름답게 살고 싶어
산책길 밟아서 가면 푸른 물이 든단다.
구름이 눈이 부신 언덕 위 한켠에는
그 오랜 약속처럼 기다림을 간직한 채
다가가 등을 기대면 나를 반겨 주던 너.
꼭꼭 숨기고픈 우리들의 비밀들
둥지에 알을 품듯 달을 품던 잎새 사이
포로롱 새떼가 되어 빗소리로 내린단다.
-임정집(울산 중앙고 2학년), [나무] 전문
(제3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중고등부 장원)
지난 여름 할머니와
단둘이 보낸 두 밤
살은 다 버리시고
말갛게 야위셨던
아프고 늙어서 슬픈
할머니의 자투리시간
몹쓸 병환으로
치아도 머리카락도
떨어져 나가버린
어두운 그림자가
주름진 밤을 밟으며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 밤 다짐한 걸
행여 잊을까봐
봉숭아 붉게 찧어
약속 인양 얹어드렸다
배웅 때 흔들어주신
손톱에 핀 꽃잎 두 장
-김봄(대구 정화여고 1학년), [할머니 손톱] 전문
(제3회 대구시조전국공모전 중고등부 차하)
판자집 늘어선 거리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양철 지붕 붉은 눈물 하얀 벽에 흘러내리고
오래 전 멈추어버린 크레인 두 대 뎅그렇다.
녹슨 철근 쌓여 있는 넓은 부지 여기저기
찌그러진 기름통 몇 개 컵라면 그릇 나뒹굴고
불꺼진 하남 주유소, 오지 않는 손님 기다린다.
-김혜진(용인 수지고 1학년, [붉은 풍경] 전문
(2001년 6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논길을 가로질러 어둠이 찾아오면
노간주나무 울타리께 주인 잃은 자전거
팔 벌린 당산나무엔 딱새 박새 깃드는데.
전등빛 새나가는 키 작은 부엌마루
할머니 숟가락, 부딪는 소리 외로워
외등도 환하게 서서 날벌레들 부릅니다.
-황인희(서울 개포고 3학년), [외가] 전문
(2002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 시조대학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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