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Anton Schinack).
-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정원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소조(小鳥)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인적은 끊겨 거의 일 주 간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官城), 그래서 벽에서는 흙 뭉치가 떨어지고 한 창비(一窓扉)의 삭은 나무 위에 "아이시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거의 판독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몇 해고 몇 해고 지난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의 소행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안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가‥‥‥‥”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혹은 하나의 연애 사건, 혹은 하나의 허언(虛言) 혹은 하나의 치희(稚戱), 이제는 벌써 그 많은 죄상을 기억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때문에 애를 태우신 것이다.
-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철책가를 그는 언제 보아도 왔다 갔다 한다. 그의 빛나는 눈, 그의 무서운 분노, 그의 괴로운 부르짖음, 그의 앞발의 한없는 절망, 그의 미친 듯한 순환, 이것이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슬프게 한다. '횔델린(1770-1843, 독일의 시인)'의 시장(詩章), '아이헨도르프(1788-1857, 독일 후기의 낭만파 서정시인 작가)의 가곡, 고구(故舊)를 만날 때. 학창 시대의 동무 집을 심방하였을 때. 그리하여 그가 이제는 우러러 볼 만한 하나의 고관 대작이요 혹은 돈이 많은 공장주의 몸으로서, 우리가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하나의 시인밖에 못 되었다는 이유에서 우리에게 손을 주기는 하나, 그러나 벌써 우리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같이 보일 때.
- 포수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사슴의 눈초리, 자스민의 향기. 이것은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개의 노수(老樹)가 선 내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고요한 음악. 그것은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에 모래 자갈을 고요히 밟고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한 곡절의 쾌활한 소성(笑聲)은 귀를 간질이는데, 그러나 당신은 벌써 근 열흘이나 침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 달아 나는 기차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것은 황혼이 밤이 되려고 할 즈음에 불을 밝힌 창들이 유령의 무리같이 시끄럽게 지나가고 어떤 어여쁜 여자의 얼굴이 창가에서 은은히 웃고 있을 때. 찬란하고도 은성(殷盛: 번화하고 풍성한)한 가면 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제씨(諸E)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애인이 배우와 인사할 때. 공동 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십오의 약년으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는 누워 있음'이라 쓴 묘표를 읽을 때. 아, 그는 어렸을 적의 단짝 동무의 한 사람.
- 날이면 날마다 항상 언제나 도회의 집과 집의 흥미 없는 등걸만 보고 사는 시커먼 냇물. 많은 교사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랫동안 애인으로부터 편지가 아니 올 때. 그는 병이나 난 것이 아닐까? 혹은 그 편지는 다른 남자의 손에 잘못 가서 그는 지금 동경과 애정이 넘치는 모든 언구를 웃으면서 읽고 있지나 않는가? 혹은 애인의 심장이 화석한 것일까? 혹은 그는 이러한 봄밤을 다른 어떤 남자와의 산보에 공(供:바쳐)하여 향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첫 길인 어느 촌주막에서의 외로운 일야(一夜). 시냇물의 쫄쫄대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속살거리는 음성이 들리며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칠 때. 그 때 당신은 난데없는 애수를 느낄 것이다. 날아가는 한마리의 창로(蒼鷺). 추수 후의 텅 빈 밭과 밭, 부인의 이취(泥醉: 술에 곤드레 만드레 취함). 어렸을 적에 산 일이 있던 조그만 지방에 많은 세월을 경과한 후에 다시 들렀을 때. 아무도 이제는 당신을 아는 이 없고 일찍이 놀던 자리에는 붉고 거만한 옥사들이 늘어서 있으며, 당신의 본가이던 집 속에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데 왕자같이 놀랍던 아카시아 수풀은 베어지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오륙월의 장례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한 종성(鐘聲). 동라(銅鑼).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흘러 다니는 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처녀의 가는 손가락이 때묻은 서류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월 밤의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이삼 절, 어린아이의 배고픈 모양. 철창 안에 보이는 죄인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무 위에 떨어지는 백설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참고자료
안톤 슈낙 : 독일 표현주의 작가, 그의 글들은 서정과 낭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물을 관찰할 때에도 그 섬세한 시선과 감각이 돋보이는 문체로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작품 중, 시나 소설보다는 수필이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필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소음,음향, 음성들) 등이 있다.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슬픔과 삶의 허망함에서 오는 우수를 노래한 수필로서, 산문이라기보다는 서정시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글이다. 독자가 삶의 우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적절한 상황을 찾아내는 예리함과, 그것들을 짧은 구절 속에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감각적 문체가 돋보인다. 이 글을 쓴 안톤 슈나크는 장르에 관계없이 주로 일상 생활의 주변에서 얻은 서정성이 강한 소재로부터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 내어 독일에서는 짧은 산문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