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삼층석탑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바라본 병산
병산
마흔 살 / 안도현
내가 그동안 이 세상에 한 일이 있다면
소낙비같이 허둥대며 뛰어다닌 일
그리하여 세상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 튀게 한 일
씨발, 세상의 입에서 욕 튀어나오게 한 일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 그 무게 불린 일
병산 서원 만대루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와이셔츠 단추 다섯 개를 풀자,
곧바로 반성된다
때때로 울컥, 가슴을 치미는 것 때문에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던지던 시절은 갔다
시절은 갔다, 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로 마흔 살이다
바람이 겨드랑이 털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고
꾸역꾸역 나한테 명함 건넨 자들의 이름을 모두
삭제하고 싶다
나에게는
나에게는 이제 외로운 일 좀 있어도 좋겠다
지난 주말에 안동역사답사를 다녀왔다. 우리 동네에서는 좀처럼 가기 힘든 코스다. 부석사와 병산서원은 이번이 두번째다. 오래 전 일이어서 병산 앞을 흐르는 낙동강 바람이 매서웠다는 것과 영남 지방의 서원이나 절의 규모가 큰 데 대해 놀랐던 기억만 흐릿하다. 요즘엔 어디를 가도 좀처럼 구체적인 자료들을 기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답사를 다녀와도 새로이 알게 되는 것은 별로 없고, 함께 한 사람들과의 대화나 분위기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부석사는 이름이 갖는 매력도 있지만, 그 거리만으로도 우리를 애타게 한다. 부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는 아홉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단다. 유독 경사가 심한 계단을 다 올랐을 때, 감히 부처의 세계까지는 아니어도 소백산 자락을 시원하게 굽어볼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시야가 흐렸다. 함께 갔던 지인이 부석사에 대하여 존재함 만으로 위안이 되는 건축이 아니냐고 한다. 부석사 안내를 맡은 선생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생각해 보라 한다. 다시 오게 된 부석사 사이에 나는 어떤 시간의 무늬결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여기 있어서 누구에게 위안이 되고 있는가?
병산 서원은 안도현의 시와 함께 떠오른다. 내 나이 마흔 때 안도현의 '마흔 살'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병산서원에 가면 만대루에 꼭 누워보리라 하였다. 마흔이 지난 지 오래이다. 만대루에는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가로막는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먼저 헤아리는데, 가끔은 '울컥' 치미는 것들이 있던 시절이 그립다. 시절은 정말 다 가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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