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정과 석천정사
청암정과 석천정사
충재 권벌유물전시관
전서체로 쓴 靑巖水石(청암수석)은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의 글씨이다. 과거급제 않고도 정승 반열에 오른 유명한 문인이다.
겹진달래 붉은 꽃잎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 피보다 붉은 겹진달래를 처음 본 것은 창계 숭절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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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을 품고 있는 봉화 닭실[酉谷]마을은 명승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암정을 품은 달실마을은 닭실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옥적봉(玉笛峰)을 수탉에 서쪽 백운령(百雲嶺)을 암탉에 비유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길지라고 한다.
충재 권벌이 기묘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내려온 이후 퇴계 이황을 비롯한 학자들과의 교류가 있던 곳으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
퇴계 이황이 충재 사후에 청암정을 방문하여 청암정제영시(靑巖亭題詠詩) 를 남겼다.
酉谷先公卜宅寬(유곡선공하택관) 충재공이 닭실에 집터를 점지하여
雲山回復水灣環(운산회복수만환) 구름 걸린 산 둘러 있고 다시 물굽이 고리처럼 둘러있네
亭開絶嶼橫橋入(정개절서횡교입) 외딴 섬에 정자 세워 다리 가로질러 건너도록 하였고
荷映淸池活畵看(하영청지활화간) 연꽃이 맑은 연못에 비치니 살아있는 그림 구경하는 듯하네
稼圃自能非假學(가포자능비가학) 채마밭 가꾸고 나무 심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능했고
軒裳無慕不相關(헌상무모불상관) 벼슬길 연모하지 않아 마음에 걸림이 없었네
更憐巖穴矮松在(갱련암혈왜송재) 바위 구멍에 웅크린 작은 소나무가
激勵風霜老勢盤(격려풍상노세반) 풍상의 세월 겪고 암반위에 늙어가는 모습 더욱 사랑스럽네
지느러미엉겅퀴 피어나는 모습
징검다리 건너 솔길 지나 석천정사 가는 길
충재 권벌의 아들 청암 권동보가 題石泉精舍(제석천정사) 로 답하였다.
肩輿溪上路(견여계상로) 작은 가마가 지날 수 있는 시내가 길가에
書舍水雲間(서사수운간) 글 읽는 정사가 물과 구름 사이에 보이네
風雨三秋夜(풍우삼추야) 깊은 가을밤에 내린 비바람과
煙霜十月寒(연상시월한) 뿌연 서리에 시월의 공기 차갑구나
葉稠巖竇密(옆조암두밀) 나뭇잎은 떨어져 바위틈에 빽빽하고
苔厚石稜斑(태후석능반) 이끼는 바위틈에 두껍게 끼여 아롱졌네
百歲徜徜地(백세상상지) 백세토록 조상께서 거니시던 이곳에
親朋幾往還(친붕기왕환) 친한 벗들 얼마나 오갔던고.
청암 권동보(靑巖 權東輔)가 아버지 충재(冲齋) 권벌(權橃)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석천정(石泉亭)과 석천정사石泉精舍가 석천계곡(石泉溪谷)에 놓여 있다.
석천계곡의 암벽에 청하동천(靑霞洞天)은 충재 권벌의 5대손인 권두응(權斗應) 의 작품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경주 양동(良洞)마을, 안동 내앞(川前)마을, 풍산 하회(河回)마을과 함께 삼남지역의 4대길지(吉地)로 꼽고 있다.
출처: http://ktk84378837.tistory.com/8498 [시사랑꽃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