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봄 - 도화
aramir
‘봄 - 도화’
먹거리와 민속품이 뛰어나다는 낙안읍성을 향했다. 이왕 가는 길, 모처럼 봄나들이를 겸해 드라이브나 해볼 양 일부러 약간은 더 멀더라도 쉬엄쉬엄 갈수 있는 국도를 택했다.
그러다 전라도 남원에 이르러 진주방향으로 길을 틀어 국도를 따라 가다보니 야트막한 산기슭부터 온 동네가 도화 즉, 복숭아꽃이 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갓 물오른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앉은 핑크빛 꽃다발들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뜨린 부케와도 같고, 꽃송이의 그 단아한 화려함은 마치 앳된 첫사랑 소녀의 붉은 뺨을 꼭 닮은 모습이다.
‘어허야 뒤야 도화로다. 이 당산 저리 당산 획 틀어진 당산, 마누라 머리끝에다 법단댕기만 달아버려라. 빡빡 얽어 머리 하나도 없는 것이 함박쪽박 뒤집어쓰고 괴삽 담박질만 치누나. 얄궂더라 야야, 삼막골 가시나가 얄궂더라. 시집가기 전 쌍둥애 낳고 자석아범을 찾으려다 관례청으로 들어가더라.’
선소리의 일종으로 이른바 도화타령의 일부다.
그러고 보니 이 도화타령이 본디는 경기도 잡가였는데 의외로 전라남도 부녀자들이 많이 불렀다는 이야기가 헛소문은 아닌 것 같다. 옛날, 도화라는 기생이 고종의 총애를 받게 되자 이를 시샘한 엄비가 바늘로 도화의 얼굴에다 상처를 내 고종의 눈 밖에 나게 한 것을 비꼬는 노래라고 한다.
생김새 자체가 원래 하트형이 돼서인가, 복숭아는 여전히 관능과 성욕의 상징이다. 도화 즉, 복숭아꽃이 피면 남녀가 모두 춘흥을 억누르지 못하는데, 지나친 성욕으로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소위 도화살이라는 것도 그런 믿음의 반영이 아닌가 싶다.
또한 복숭아는 장수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옛날 연적이나 주전자 등에 복숭아꽃이나 그 나무, 열매 등이 그려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복숭아는 이상향이나 불로장생 또는 아름다운 여인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옛사람들은 복숭아가 요사스런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으레 부적으로 도화나무로 만든 인형을 대문에다 매달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도화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는 풍습이 있어왔다.
복숭아는 여성미용에 탁월함은 물론 약리작용도 매우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한때 종기에 붙이는 특효약 고약의 주원료가 복숭아 가지와 잎이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복숭아가 강한 해독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복숭아는 꽃이나 열매, 이파리, 씨앗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당장 눈에 보이고 우리의 넋을 빼앗는 것은 도화경이다.
아름다운 도화 풍광에 젖다보면 누구나 단박에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도화 속에 파묻히는 기분이 들게 된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꽃밭을 따라 이 나무 저 나무를 오가며 노닐다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저도 모를 행복에 취하게끔 마련이다.
말 그대로 무릉도원에서 벌어지는 장주지몽이 따로 없다. 장주지몽, 어느 날 중국의 장자가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꽃밭의 나비가 되어 즐겁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꿈속에서나 지금이나 자신이 곧 장자임은 분명했지만, 자신이 꿈속에 나비가 됐던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자기가 됐던 것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자신이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자신이었으니, 현실이 곧 꿈이고 꿈이 곧 현실이라.
그렇다면 왜 그렇게 구별이 애매할까. 사람을 비롯한 만물은 원래 조물주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하나의 자연적인 객체라는 데 그 요인이 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부지부식 간에 변화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다시 말해 자연도 자연에 따라 생멸하는 것인 만큼, 모든 개체들은 하나같이 무차별적인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론이다.
때문에 이런 자연의 참된 의미를 충분히 감득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자유와 평온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장자의 논리란다.
어쨌든 나비가 되어 도화 밭을 돌아다니다보면 뜻밖에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원래 꽃이라는 것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도화는 멀리서 보는 사람에게는 환상을 주고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에겐 무관심한 바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개개의 꽃잎이나 꽃술의 싱그러운 생명력은 그야말로 선녀와도 견줄 만하다. 하지만 꽃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왠지 마음을 흡인하는 매력이나 가슴 짜릿한 감동은 별로라는 생각이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그 보다는 꿈속의 허무함과 실존의 신비함이 공존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꿈같은 이상에 현혹이 되어 실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가까이 있는 행복을 잃어버리는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다.
물론 행복의 기준도 사람이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부자가 끝없는 부를 지향하든, 거지가 안빈낙도를 외쳐대든 모두가 자기만의 행복인데,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이든 행복에 도달하려면 무엇보다 현실 파악부터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아름답고 포근한 봄, 멀리 있는 꽃과 가까운 곳의 꽃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도화 속의 장주지몽, 그래서 그 아우름의 힘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따사로운 봄날, 도화 밭에서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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