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봄 - 매화

권운영 2018. 4. 4. 20:16

 

aramir

본 칼럼은 부단한 반복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계절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반추해보고자한 글입니다.

‘봄 - 매화’ 

 

 

예로부터 우리네 한국인의 미의식은 독특하기로 유명했다.

일례로 꽃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이 화려하고 향기가 진한 꽃보다는 수수하고 은근한 멋을 풍기는

의미 있는 꽃들을 훨씬 더 좋아했다.

 

이와 같은 정서는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의 시 한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포야위처부시자 (逋也爲妻不是姿)

포정수백절하화 (抱貞守白節何花)”

 

즉, 임포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평생을 고산에 숨어 산 것은

매화의 아름다움에 혹해서가 아니라

매화가 지닌 고유의 절개를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송나라 임포가 이처럼 다부진 절조 하나에 반해 매화를 사랑했듯이,

무슨 꽃이든 아름다움에다 윤리적인 것이 더해졌을 때야

비로소 사랑받는 꽃이 된다는 것이다.

 

매화를 식물도감에서 찾아보면 장미과에 속한 낙엽 소교목으로,

높이는 4-5미터에 달하며 이파리는 달걀꼴에 톱니가 있고 어긋맞게 핀다고 설명한다.

4월경에 잎에 앞서 흰색이나 분홍색 꽃이 먼저 피고,

살구 모양의 황색 열매는 6월경에 열리는데,

사람들은 이 열매를 매실이라고 하여 흔히 먹거나 약으로 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매화의 매력은

그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윤리적 의미에 있지 않은가 싶다.

 

매화는 일생동안 추위에 떨면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때로는 희고 맑은 꽃과 은은한 향기,

기고한 모습 때문에 설중군자로 일컬어지면서

세간으로부터 아예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매서운 혹한을 이겨내는 속성은 물론

다른 꽃들보다 일찍 피는 부지런함도 매화가 지닌 덕목이다.

뿐만 아니라 매화는 누구한테나 반갑고 의지가 되는 친구쯤으로 여겨지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것도 그냥 벗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청우 또는 청객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그래서 이른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라고 하고,

봄철에 피는 매화를 기우라고 했단다.

 

그래서인지 매화를 찾아 떠나는 탐매여행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빠질 수 없는 주요 봄날행사였다고 전해진다.

 

그네들은 찬 서리 눈발을 헤치고 나온 설중매를 보면서,

또는 이른 봄 가장 먼저 피어난다는 고우를 반기면서

나름 군자로서의 각오를 다졌다고 하니 가히 그 탐미심은 놀랄 만하다.

 

화사한 벚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과 진하지도 독하지도 않은

은근한 암향이 뭇 시인과 묵객들의 발길을 그렇게 이끌었던 것이다.

매화의 향기는 짙지 않고 매우 은은하다고 해서 흔히 암향으로 표현된다.

 

때로는 매화가 벗 이상의 존재로 지칭되기도 했는데,

대부분 현명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 곧잘 의인화가 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고현일사, 설중고사, 식춘 등의 비유가 그것으로,

그와 같은 여러 가지 비유가 한데 어울려 만들어진 별칭이 이른바 호문목이라는 것이다.

진나라 무제가 공부할 때 생겨난 고사로서,

글을 열심히 읽으면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책읽기를 게을리 하면 꽃이 시들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매화는 특유의 티 없이 순수하고 깨끗함으로 인해

신선이나 귀인 또는 높은 절개를 지닌 선비 등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때문에 매화는 매은이나 매선이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일련의 도교적인 이미지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눈 내린 산중의 세외가인이라는 말이나,

매화를 찾아다닌다는 탐매나 심매라는 의미는 신선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구도를 뜻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솔솔 부는 춘풍 속에 아지랑이 너울대는 봄의 향연이 시작됐다.

세상은 포근한 봄의 기운을 마다하고 연일 매몰찬 세풍에 젖어 시끄럽고 어지럽지만,

이럴 때 일수록 새 봄의 다짐을 더욱 새롭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이른 봄 소담스레 뜨락에 핀 매화를 보노라니,

이참에 나도 아예 저 먼 곳 어디로든 심매에 나서고픈 마음이다.

 

 

 


출처 : 소요유[逍遙遊]
글쓴이 : arami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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