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이육사 시인 시모음
이원복 또는 이원삼 ( 진성 이씨 )
출생일 1904년 5월 18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면
사망일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감옥 필명 이육사 직업 시인 독립운동가 장르 시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6년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처음 투옥되었다.
이육사라는 필명은 이때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으며, 나중에 이육사(李戮史), 이육사(李陸史)로 고쳤다. 또다른 필명으로 이활(李活)이 있다.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다. 1943년 국내에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구금 중에 사망했다. 유고시집 《육사시집》(1946)이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다.
절정(絶頂)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청포도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흰 돚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꽃 /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황혼 / 이육사
골방의 커어튼을 걷고
산 / 이육사
바다가 수건을 날여 부르고
바다의 마음 / 이육사
물새 발톱은 바다를 할퀴고
잃어진 故鄕(고향) / 이육사 제비야
한 개의 별을 보자 / 이육사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十二星座)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출전 - 『風林』(1936.12)>
파초 / 이육사
喬木 (교목) /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듯이
자야곡 / 이육사
수만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정기 / 이육사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 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
남한산성 /이육사
넌 제왕(帝王)에 길들인 교룡(蛟龍)
말 / 이육사
斑猫(반묘) / 이육사
어느 沙漠(사막)의 나라 幽閉(유폐)된 後宮(후궁)의 넋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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