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실학자인 이중한의 『택리지』에는 영남 사대길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 풍산 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 의성 김씨 집성촌인 내앞마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살고 있는 양동마을, 그리고 안동 권씨 집성촌인 봉화의 달실마을이 이중환이 꼽은 사대길지다. 그 중 달실마을은 전통마을로도 유명하고, 불천위 제사상에 올리던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과(유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마을이다. 뉴스레터 5월호에서는 이곳 달실마을의 차종손이자, 충재박물관에서 학예 활동을 하고 있는 권용철 학예사를 만나보았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권용철이라고 합니다. 안동 권씨 39대(충정공파 19대)손으로 달실종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현재는 충재박물관에서 학예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 달실마을은 안동권씨의 단일집성촌으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유교문화권의 전통마을입니다. 이곳 달실마을에 대하여 간단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달실은 금계포란형의 지형으로 인해 이름지어진 곳입니다.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이 마치 알을 품고 있는 금닭의 형태와 같다고 해서 지어진 우리말 이름입니다. 이 곳에 처음 터를 잡으신 분도 500년 전 충재선조이셨습니다. 기묘사화로 인해 파직된 1520년에 이곳에 살 집을 짓고, 이후 공부할 곳으로 청암정 등을 건립하셨습니다. 아직까지도 선조대의 각종 문화재와 자연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조선중기의 실학자 이중한이라는 분께서는 이곳을 영남의 사대길지라고 본인의 저서인 『택리지』에 기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충재선조께서 이곳에 입향하셨고, 지금 달실은 안동권씨 단일집성촌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Q 네. 말씀 중에 충재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말이 나온 김에 달실마을의 입향조가 되시는 충재 권벌 선생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충재선조께서는 조선중기의 명신이었습니다. 중종대로부터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忠과 義를 바탕으로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셨습니다. 특히,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의 양대사화를 모두 겪으셨던 분입니다. 본인이라는 개인보다는 국가라는 큰 틀을 위해 한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을사사화의 경우에는 사화를 일으킨 소윤일파 측에서 온갖 방법을 다 해서 회유하고자 했으나, 굴하지 않으시고 본인의 소신을 정확히 밝히고 소윤일파의 잘못에 대한 시정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비록 당대에는 두 번의 사화에 화를 당하셨고, 일흔에 겪은 을사사화로 인해 유배지에서 돌아가시는 등 고난을 겪으셨지만, 당시의 사관들과 후대의 선비들은 충재선조의 고고한 뜻을 높이 칭송하였습니다. 살아계실 때는 우찬성이라는 관직이었고, 돌아가신 이후 영의정에 증직되셨습니다. 조선의 명망 높은 선비들이 한결같이 칭송한 자랑스러운 선조이자, 안동권씨 충정공파의 파조이십니다.
Q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을에서는 달실마을이라고 부르는 이곳 달실마을이 행정구역상으로는 닭실마을이라고 표기되어 있던데요, 어떤 게 맞는 건가요?
닭실이라는 마을이름은 ‘달실’의 표준어 적용으로 인한 것입니다. 경북 북부지방의 방언은 닭을 달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유명사에 표준어 적용이라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닭실이라고 이름 지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등이 고유명사에 표준어 적용이 불가피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지금의 시기에 굳이 닭실이라는 잘못된 표준어 적용을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500년간 불리어왔던 달실이라는 원래의 이름이 닭실로 바뀐 것은 불과 3~40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여러 이유 때문에 그 잘못을 그대로 가져갈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원래의 이름 ‘달실’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행정용어인 닭실이 있는 상황이므로 현재는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달실’로 불러주십시오.
Q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어릴 적 할머니께서 ‘닭’을 ‘달’이라고 발음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달실마을은 전통적인 단일집성촌으로도 그 가치가 대단히 높지만 최근에는 전통한과마을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달실마을의 한과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달실 한과만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한과는 이곳에서는 원래 ‘유과’라고 부릅니다. 유과는 원래 충재선조의 제사상에 올리던 제사음식이었습니다. 특히 불천위로 지정된 충재선조의 제사에 올리는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는 당시의 고급음식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찹쌀을 골라 정성들여 달인 조청과 각종 재료를 활용해서 제작하여 왔습니다.
이 유과가 ‘닭실한과’로 대중에게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한 마을에 한 특산품을 제작하여 판매하기를 권유하던 국가시책과 전통음식이 있던 우리마을의 특성이 맞아 제품으로 생산해서 판매한 것입니다. 우리 마을의 닭실한과는 손으로 제작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단점이 될 때도 있지만, 손맛이 전해지는 특징이 있는 한과가 ‘닭실한과’입니다.

Q 네. 바로 그 유과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과자축제가 봉화에서 3년 째 개최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오는 5월 4일~5일 달실마을과 봉화 내성천 일대에서 한국과자축제가 열리는데요, 예년보다 더 풍성해진 프로그램들로 짜여있다고 들었습니다.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나요?
3년째 되는 만큼 그 동안의 노하우를 활용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 중입니다만, 주최측인 세계유교문화재단과 협의해서 준비 중인 큰 주제로는 옛 과자 접해보기, 달실의 전통문화 체험하기 등이 있습니다. 준비 중인 관계로 더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추후 세계유교문화재단의 홈페이지나 홍보물 등을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Q 네. 감사합니다. 올해도 봉화로 가면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즐거운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뉴스레터 독자들과 미래의 관광객들에게 봉화에 대한 자랑 한 번 해주시면서 끝인사 부탁드릴게요.
봉화는 전통문화가 아름답게 전수되고 있는 경북 북부지역의 진주와도 같은 곳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봉화를 ‘옛 이끼까지 곱게 간직한 살아 있는 민속촌’이라 말하며, 봉화가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록하길 포기했다고 합니다. 봉화가 많이 알려지면 이곳에 잘 보존되어 왔던 아름다움이 훼손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지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잘 보존되어 오고 있는 문화재 등이 이 곳 봉화에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숨어있는 문화유산이 봉화의 자랑 중의 하나입니다. 화려하고 요란하지는 않지만 고요한 가운데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서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쉬면서 마음의 재충전이 가능한 곳이 바로 봉화입니다.
권용철 학예사의 말 곳곳에서 고장(봉화)에 대한 애향심과 마을(달실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느끼는 그대로의 본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기에 충분할 만큼 봉화, 그리고 달실마을은 아름다운 곳이다. 5월 4일~5일 봉화군 내성천 일대와 달실마을에서 한국과자축제가 열린다. 복잡한 도시에서 잠깐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봉화군을 만끽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축제도 즐기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해 보는 건 어떨까?
세계유교문화재단 문화기획팀 김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