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의 눈망울에 비친 하늘빛 달개비꽃
집 근처 도랑 옆에 지천으로 피던 닭의장풀이 다른 이름
당뇨병 특효약 잘못 알려져 한때 수난, 번식력 왕성해
» 달개비. 끝이 노란 4개의 헛수술이 위에 돌출해 있고 아래로 뻗은 2개의 수술 가운데 암술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김성호 교수
달개비의 꽃은 생김새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우선, 수술과 암술의 바깥쪽에 위치하여 수술 및 암술을 보호하는 꽃덮개 두 장은 어깨를 맞대어 활짝 펼쳐져 있습니다. 두 장의 꽃덮개는 소나기가 한 차례 시원스럽게 지난 뒤의 하늘빛을 살며시 떠와서 물들인 듯한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나머지 꽃덮개 한 장은 아래로 내려와 있으며 게다가 잘 보이지도 않는 옅은 흰색으로 수줍게 숨어 있습니다. 위치나 색으로 볼 때 푸른빛의 다른 두 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가운데로 수술 여섯 개와 암술 하나가 있습니다. 꽃가루가 잔뜩 묻어있을 것 같아 보이는 노란색의 수술 네 개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가짜 수술이기에 정작 꽃가루는 묻어 있지 않으며 그래서 헛수술이라고 부릅니다. 꽃에 꿀이 없는 달개비의 경우 헛수술은 진화과정에서 마련한 독특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가루가 제대로 묻어 있는 수술은 아래로 길게 늘어진 두 개의 수술이며, 그 사이에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으로 암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꽃덮개와 수술을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으로 생긴 포(苞)가 조금 떨어져 감싸고 있습니다.
모든 식물이 그러하지만 달개비는 보다 더 생명력이 강한 식물입니다. 줄기의 윗부분은 곧게 섭니다. 그러나 줄기 아랫부분은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며 땅을 기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다시 줄기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자리를 잡으면 엄청난 속도로 번져나갑니다.
» 달개비의 전체 모습. 그림=안경자 화백, <숲은 들을 접시에 담다>
신비스러운 나비의 모습도 닮아 지리산과 같은 신령한 산의 아주 깊은 골짜기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달개비는 무척 흔한 식물입니다.
달개비를 닭의장풀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닭장과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시골에는 집마다 크던 작던 형편을 따라 닭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꼬박꼬박 하나씩 낳아주는 알도 얻고,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해야 하는 날이면 정성을 다한 밥상을 마련하기 위해 키웠던 것이 닭입니다.
닭은 끼니마다 따로 먹이를 챙겨주지 않아도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혼자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모이가 될 만한 것을 쪼아 먹으면서 스스로 커주었지만, 어두움이 내리면 족제비와 삵들이 호시탐탐 닭을 노렸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닭을 지키기 위해 지었던 것이 바로 닭장이었습니다.
닭장의 위치는 집과 집 밖에 있는 뒷간의 사이쯤이었으며, 닭장 바로 뒤쪽으로는 대개 집안에서 사용하고 버리는 물이 지나는 도랑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닭장 주변의 도랑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또한 꽃덮개의 모양이 꼭 닭의 볏을 닮았다 하여 이래저래 붙여진 이름이 바로 닭의장풀입니다.
닭의장풀을 그대로 한자로 고쳐 부르는 이름이 계장초입니다. 줄기가 여러 마디로 되어 있는데다 잎은 대나무 잎의 생김새를 닮아 죽절채라고도 하고, 짙푸른 빛깔의 남색 꽃을 피워 남화초, 벽선화라 부르기도 합니다. 순순한 우리말 이름으로는 달개비 말고도 닭의꼬꼬, 닭의밑씻개 등이 있습니다.
» 여름철 들판에서 흔히 보는 달개비. 사진=강재훈 기자
봄철에 돋아난 달개비의 어린 잎은 성질이 순하고 쓴 맛이 없어 먹을 것이 궁했던 시절 귀한 먹을거리였으며, 꽃은 의복과 천을 남색으로 물들이는 염료의 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한방에서는 달개비 전체를 잘 말려 압척초(鴨跖草)라는 약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압척초는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고 당뇨병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개비가 당뇨병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특효인 것으로 많이 과장되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때 그 숱한 달개비가 보기 힘들어질 정도로 수난을 당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조차 닭장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늘이 살짝 드리워지며 습한 기운이 조금 도는 곳이라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라도 닭의장풀은 피어납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아파트의 그늘진 벽을 따라 달개비 한 무더기가 여름 내내 피어있습니다. 출근하는 길에 그 앞에 무릎 접고 쪼그려 앉아 어여쁜 꽃들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꽃의 빛깔을 따라 파란빛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 꼬마 친구 한 명이 다가와 앉으며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묻기에 달개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출근길이고 꼬마는 등굣길이라 천천히 아주 자상하게 설명을 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꼬마가 달개비에 대하여 얼마나 제대로 알게 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꼬마의 눈빛이 더욱 맑아진 것으로 감사한 아침이었습니다.
달개비가 세력을 점점 더 펼쳐 사람이 다니는 길까지 밀고 나오는 것이 조금 불안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달개비 무리가 혹시 누군가에 짓밟혀 있더라도 그것이 나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달개비를 만났던 그 꼬마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할 것입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 고침: 본문의 달개비 그림의 출처는 '한겨레 사진 디비'가 아니라 안경자 화백의 작품이기에 바로잡습니다(2012. 8.29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