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 애닯고 슬프다
어느 날,
사랑에 관한 한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았죠. 나, 바보였구나.
부끄럽고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멀뚱히 서 있기만 했구나. 당신도 사랑이 지나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포기하지 말라고, 이 글들을 썼습니다.
●선인들의 로맨틱한 한시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감성은 마찬가지다. 하물며 사랑에 대한 감정이야 더더욱 다를 게 없다.
사랑하는 정인(情人)과 늘 붙어 있다면 이토록 절절한 사랑을 굳이 글로 표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늘 사랑스런 눈길을 마주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사랑의 눈길은 멀기만 할까? 그래서 그 마음을 글로 남긴다.
글쓴이 이우성은 패션잡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 에디터이자 연애 칼럼니스트이다. 2005년부터 패션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던 그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시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는 미적인 것을 동경한다. 또한 그것의 본질을 궁금해 한다. 비난조차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옷을 못 입는 것은 우울하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글로서 자신을 증명해왔다.
책은 첫사랑, 사랑의 기쁨, 변심, 이별, 사랑의 슬픔 등 8개 장에 걸쳐 사랑을 노래한 칠십여편의 한시를 실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한시를 해설하지는 않는다. 한시를 옮긴이는 따로 있다. 원주용 성균관대 겸임교수다.
젊은 시인답게 한시를 읽고 떠오르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한시를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그저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다.
7세기 신라시대에 활약한 여승 설요부터 조선시대의 뛰어난 문장가였던 박제가, 임제, 최경창, 권필 그리고 허난설헌, 이옥봉, 황진이, 이매창 등 여류 가객의 로맨틱한 한시들을 엮었다.
극도로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 한시가 어렵고 고리타분함을 뛰어넘어 달콤한 솜사탕 같은 연애 편지로 느껴진다.
⊙사랑이 나를 그대의 세상으로 부르네 화운심혜사숙정(化雲心兮思淑貞) 동적멸혜불견인(洞寂滅兮不見人) 요초방혜사분온(瑤草芳兮思芬蘊) 장내하혜청춘(將奈何兮靑春)
이 시는 7세기 여승(女僧) 설요(薛瑤)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당나라로 건너가 좌무장군이 된 설승총의 딸이다. 열다섯 살에 전쟁 중에 아버지가 죽자 세속을 떠나 승려가 되었다.
6년 동안 수행했지만 불교 신도인 곽원진이 나타나자 청춘의 타오르는 정을 이기지 못하고 시 한수를 지었다.
구름 같은 이 내 마음 정숙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산골짜기 적막하여 사람 보이지 않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을 하는데, 장차 어찌하리, 이 내 청춘은.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운 적막한 산골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를 발하자 이를 바라보는 여인은 자신의 설레는 마음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신분이야 어떻든 간에 젊은 청춘의 가슴에 춘정이 없으리오. 꽃들이야 때를 만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테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어찌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그대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병
지나가는 봄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不是傷春病불시상춘병)
오로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생긴 병이에요 (只因憶玉郞지인억옥랑)
티끌 같은 세상 괴로움만 쌓이니 (塵世多苦累진세다고루)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 그대 마음 때문이죠 (孤鶴未歸情고학미귀정)
조선 선조 때 전북 부안 기생 매창(1573~1610)은 정(情) 주고 떠난 무정한 남자를 그리며 노래한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 경험은 사랑에 빠져본 이라면 알리라. 저자는 덧붙인다. "'위에 염증이 있어요' 의사가 말했다. 의사가 염, 증,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알게 되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리움은 머리만의 일이 아니라 또한 몸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염증이 생길 이유가 없으니까"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 사랑의 열병도 상대가 있어야 앓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매창이 그토록 그리워한 상대는 누구였을까? 매창과 사랑을 나누었던 천인 출신 가객 유희경(1545~1636)은 아니었을까 싶다. 떠난 그도 매창을 그리며 이렇게 읊었기 때문이다.
그대 집은 바닷가 부안 땅 (娘家在浪州낭가재랑주) 내 집은 멀리 서울에 있네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그리워하면서도 보진 못하니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오동잎 비가 되어 내릴 때는 애간장이 타네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사랑, 이 정도는돼야 하지 않을까?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탓일까, 현대인들의 사랑은 급하고도 빠르다. 하지만 그만큼 빨리 식어버린다.
그런 후엔 원수지간이 된다. 내 선물 다 돌려달라, 줄 땐 언제고 달라고 하니 더욱 기분이 더럽다. 아무튼 스마트폰으로 카톡 메세지 훅 날리는 요즘 사람들보다 옛 사람의 분위기와 정취가 훨씬 고급지다.
⊙마치 나를 보는 것처럼
절양류기여천리折楊柳寄與千里 인위시향정전종人爲試向庭前種 수지일야생신엽須知一夜生新葉 초췌수미시첩신憔悴愁眉是妾身
이 시는 홍랑의 한글 시 <묏버들 가려 꺾어>를 최경창이 한역한 것이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자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전남 영암 출신의 최경창(1539~1583년)은 글, 그림, 악기 연주, 활쏘기 등 다방면에 출중한 인물이었다.
율곡 이이 등이 포함된 팔문장계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573년, 그는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인 북도평사에 부임해서 관기인 홍랑과 사랑에 빠진다.
임기가 끝나고 한양으로 떠날 때 홍랑은 이 시조를 지어 애절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최경창은 이를 한시로 번역했다.
그는 홍랑을 잊지 못해 한양에서 결국 병이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홍랑은 7일 밤낮을 걸어 그의 집을 찾아 정성껏 간병했다.
하지만 명종비 인순왕후의 국상 기간에 관기를 불러들인 처신이 문제가 되어 그는 파직당하고 만다.
이에 홍랑도 고향 함경도로 돌아간다.
최경창이 죽자 홍랑은 최경창의 무덤 옆에서 시묘살이 3년을 지내며 자신을 범하려는 남정네의 접근을 막으려고 고의로 자신의 얼굴과 몸에 자해를 했다고 전한다.
해주 최씨 문중은 홍랑의 공로를 인정해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아래에 홍랑의 묘를 마련해 주었다.
저자는 이 시에다가 이렇게 보탠다.
'너를 만나는 시간 동안 한순간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너를 만날 거야.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면 좋을 텐데. 일어나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다시 내 일과를 이어갔다. 먼 곳에서의 여정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답장을 적어 보내야 했을까? 우리는 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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