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닭실마을 _충재 권벌선생 유적지
- 봉화여행 (1) -
청옥산자연휴양림에서 주말을 보낸후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들른 봉화 닭실마을,
행정 주소로는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1리다.
논 뒤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마을입구에는 너른 주차장과 화장실, 그리고 매점이 자리잡고 있다. (찾아간날 매점은 열지 않았다.)
닭실한과집이 바로 윗편에 위치해 있었다.
각종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는 곳인가 보다.
마을 정자에 동네 어르신들이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계신다.
마을 입구에서 왼편으로 길이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우측 마을쪽은 일반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좌측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충재 박물관과 청암정이 위치해 있다.
위쪽으로 닭실계곡이 있다고 하며, 수시로 여름 휴가를 즐기로 오가는 걸로 보이는 차량이 통행한다.
충재 권벌선생을 기리기 위한 "충재 박물관"
박물관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본관 안동. 자 중허(仲虛). 호 충재(冲齋) ·훤정(萱亭). 시호 충정(忠定). 1496(연산군 2)에 진사가 되고,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 ·사성(司成)을 거쳐 도승지가 되고, 1519년 예조참판이 되었다. 이어 삼척부사로 나가 있다가 이 해 겨울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당했다. 1533년 밀양부사로 복직되었으며,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을 거쳐 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1539년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세자우빈객(世子右賓客)을 겸하였다. 1545년(인종 1) 우찬성으로 의금부판사를 겸하였고, 이 해 7월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에 임명되었다. 8월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올랐으나 정순붕(鄭順朋)의 반대로 삭훈(削勳)되고, 1547년(명종 2)에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된 죄로 구례(求禮)에 유배된 후, 삭주(朔州)에 이배(移配)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선조 초에 신원(伸寃)되고, 좌의정이 추증되었으며, 봉화(奉化)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문집에 《충재집(冲齋集)》이 있다. [출처 : 두산백과 _네이버] 더불어, 닭실마을의 충재 권벌선생에 대한 다른 방문기는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면 좋을듯 싶습니다. ㅎ http://blog.naver.com/ssolonsun/140163328823 마을 지형이 금계포란의 형상이라 닭실마을이라 불린다는데, 마을 울타리에 보이는 닭이 알을 품는 모습이 정겹다. ㅎ 마을 논을 따라 흐르는 농수로, 요즘은 논에 물을 저리 대시는구나..... -.- 더위, 더위, 더위..... 담벼락 밑의 꽃들도 생기를 잃은듯 보인다. 청암정에 누워 낮잠 한숨 때리고 싶다. ^^ 닭실마을 부근에 있는 석천정, 충재선생의 아드님인 권동보선생이 건립했다고 한다. 석천정(石泉亭) 권벌(權橃, 1478~1548)이 세운 청암정(靑巖亭)과 함께 이 일대가 1963년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마을 앞을 흐르는 석천계곡에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되돌아 나온다. 너무 덥다.ㅎ 석천계곡에 나들이 나오신 가족들이 많다. 삼계서원으로 향하는길, 마을 성황당 앞에 아주머니 한분이 지성을 드리고 계셨다. 석천계곡 바로 옆에(100여미터) 위치한 삼계서원,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 174 이 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정공 권벌의 충절과 학덕을 경모하기 위해 유림에서 1588년(선조 21)에 건립하였다. 1660년(현종 1)에 삼계서원으로 사액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당과 정문, 문루 등이 훼철되었다가 1951년 무렵 다시 세워졌다. 서원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문이 잠겨져 있다. 돌아나오려는데 그늘밑에서 쉬고 계신 할머님이 옆문은 자물쇠만 걸쳐놓았으니 둘러보고 가라고 한다. ㅎ 삼계서원 정면의 중층 건물인 관물루는 근래에 복원된 것으로 2층 기둥까지는 콘크리이트 구조이다.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는듯 지붕이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잡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앙 강당과 좌우측 동재/서재 건물.... 강당 우측으로 돌아올라가면 사당인 충정공사가 있다. 근래(1906년)에 사림에서 세웠다고 하는데, 좌우로 농작물이 경작되고 있었다. 삼계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는길, 조금전 성황당 아주머님의 서원이 궁금해진다.... [출처] 봉화 닭실마을 _충재 권벌선생 유적지|작성자 묘풍충재 권벌(權橃)
권동보(權東輔, 1517~1591)는 우찬성(右贊成)을 지낸 권벌의 맏아들로 본관은 안동, 자는 운경(雲卿), 호는 청암(靑巖)이다. 1542년(중종 37)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547년(명종 2)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丁未士禍)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가 삭주(朔川)로 귀양가 1년 만에 죽자, 관직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와 전원의 계곡 위에 선조의 뜻을 계승한 석천정사(石泉精舍)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출처 : 석천정 _두산백과]봉화 삼계서원 [奉化三溪書院]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정구(鄭逑)가 선조 때 삼계서원의 사당을 충정공사(忠定公祠), 당호(堂號)를 정일당(精一堂), 동재(東齋)를 사무사(思無邪), 서재(西齋)를 모불경(母不敬), 정문을 환성문(喚惺門), 문루를 관물루(觀物樓)라고 이름지었다.
삼계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따랐다. 서원 출입은 전면에 자리하고 있는 중층의 관물루 아래에 설치된 환성문으로 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강당이 자리잡고 전면 좌우에 동재·서재가 있다. 강당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사당인 충정공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동재 전면 오른쪽에는 1906년 사림에서 세웠다는 신도비(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있다. [출처: 봉화 삼계서원 | 두산백과]
동재 우측정면에 위치한 신도비와 비각,